두물머리, 느티나무 연리지
두물머리, 느티나무 연리지

옥양목처럼 맑고 신선한 햇살이 해맑은 표정으로 하늘을 열었다.

샛강 갓길로 접어든다.

돌담에 묻은 옛 정취가 정겹다.

강 건너 광주 땅,

정암산 국사봉의 온화한 산세도 비에 씻겨 말끔하다.

하얀 목, 검은 털을 길게 뽑아 자맥질 삼는

가마우지 네댓 마리도 흥겨움에 취한 듯 강물을 희롱한다.

 

태백 금대봉 기슭의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지금은 가고파도 갈 수 없는 북한 지역,

강원도 회양군 사동면 금강산 옥밭봉 일대에서 비롯한

북한강의 물줄기가 국토의 심장을 가로질러

예서 만나 어우러져 하나 된 곳,

여기가 두물머리다.

 

거목이 된 느티나무 뿌리 곁에 걸터앉는다.

오랜 세월 나루를 거쳐 간

숱한 사람들의 몸 내음 짙게 밴 거목이다.

한 그루처럼 보이나

사실은 세 그루가 엉킨 연리지(連理枝)다.

껍질 사이사이 나뭇가지 틈새마다 배어있는

세월의 향기가 물씬 코끝을 자극하면서 심장 속으로 파고든다.

 

물내, 흙내, 풀내를 버무려 텃내가 되었는가?

공기마저 향그럽다.

세 뿌리가 하나 되어 통일되었으니

장대하고 우람하다.

그 늠름함이 이 땅을 지켜온 겨레의 기상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 느티나무는 신기(神氣)가 있어

병난(兵難)이 있을 때마다 미리 알려 준다고 한다.

이 땅의 역사와 생명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내세워 자랑하지 않고,

어깨 세워 으스대지 않는 품이 마치 달관한 선비의 풍모다.

탐욕스러운 얼치기 선비가 아니라

스스로는 다쳐도 이웃을 지키려는 그런 선비답다.

지난 세월

찌든 삶에 힘겨웠던 기억을 저 흐르는 물에 헹구어

말끔히 씻을 수 있다면

예서 천년만년 머물고 싶다는 생각에

불현듯 풀숲에 몸을 던져본다.

뒷등이 축축이 젖어온다.

덜 마른 빗물이건만

어쩐지 내겐 숱한 사람들의 한 서린 눈물 같아

그대로 몸을 맡겼다.

 

삼국시대, 아니 그 이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서로가 욕심내어 다투던 요충지가 여기 아니었을까?

바람 막아 줄 산을 배경으로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 찾아

기름진 옥토를 가꾸고

씨앗 뿌려 열매 거두며

자손 대대로 살아갈 옥토를 이룬 조상들의 손때가 배어있는 흙이다.

 

때로는 작은 욕심으로 나뉘어 싸우다가도

어느 세월 하나가 되는 순간

미움과 다툼은 저 강물에 흘려보내고

믿음과 사랑으로 흥겨움을 안고 살아온 겨레가 아니었던가?

 

누가 신라인의 후손이며 고구려의 후손인가?

백제의 후손은 또 누구인가?

구별하려는 이도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우리는 언제나 하나였다.

저 두물머리 강물처럼

그렇게 하나 되어 살아온 겨레며 살아갈 겨레다.

 

뭉치는 삶의 가치를 배우기 위하여 잠시 편 갈라 다퉈보지만

이내 뭉쳐서 하나가 되는

슬기를 안고 살아온 겨레라는

역사의 교훈을 두물머리는 일깨워 주고 있다.

 

축축한 풀숲에서

몸을 일으켜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하나 되어 흐르는 강기슭을 따라 걸었다.

예서 멀지 않은 곳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생가가 있다.

거기 들러 다산의 애민정신을 다시 한번 또 읽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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