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4, 비단에 채색, 53X33.4, 2017, 혼비 작가 작품
자화상4, 비단에 채색, 53X33.4, 2017, 혼비 작가 작품

친구가 멀리멀리서 온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만난다. 며칠 전부터 집안 대청소를 했다. 이부자리를 새것처럼 정갈에게 세탁했다. 모쪼록 묵혀 두었던 거울이랑 유리창도 닦았다. 김치를 담갔다. 식료품 시장을 봐서 마른 반찬도 만들었다. 고기도 절여두었다.

​오늘 늦은 시간에 친구는 제주공항에 도착한다. 국제선에서 환승하니 시간 선택이 좁아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이다. 준비가 잘 되었나 둘러보니 아주 만족스럽다. 이만하면 내가 늘 그 친구한테서 받아 온 서비스에 대한 갚음은 충분히 될성 싶다. 그런데 나는 공항에서 편리하게 내가 직접 모셔 올 수가 없다. 늦은 시간의 운전은 이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 친구도 알 것이다. 내가 이미 두 해 전부터 운전은 제한적으로만 한다는 고백을 했으니까. 그럼에도 내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처음에는 먼 길 왔기에 한 시각이라도 빨리 집에서 쉬고 싶을텐데 택시 타기 위하여 긴 줄 서서 기다리는 고생을 하게 해야할 걸 생각하니 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이 아니었다. 친구에게 불편하게 하여 내 마음이 무거운 건가. 아마도 아주 작은 부분은 그게 아닐지 모른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일 거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은 마음이 분명하다. 말로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그게 현실에서 행동으로 명확하게 보여진다는 건 왜 이렇게 싫은 건가. 씩씩하게 나를 찾아 온 친구에게 편리함으로 신속함으로 젊은이들의 능률로 당당하게 맞이하고 싶다. 이건 안되고 저건 저렇게 중간중간 쉼을 두고 시간도 장소도 가려가면서, 맞이하는 이 만남이 쭈굴스럽다. 팽팽하지 못하다.

​이런 만남만이 허용됨을 이제는 받아들이고 그거면 아주 감사하고 고맙고 특혜인 거라고 알아야 한다. 어둠이 사방으로 퍼지면 실내에서 즐기면 된다. 밝음의 시간에 기운차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들도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움인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알량한 허세를 날려보내려고 징징대고 있다. 할 수 없음의 한계를 내가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친구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일텐데. 지금 나는 내 친구의 앞길을 닦아주는 먼저 매맞은 자의 길인데도 왜 우물쭈물이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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