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멀리멀리서 온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만난다. 며칠 전부터 집안 대청소를 했다. 이부자리를 새것처럼 정갈에게 세탁했다. 모쪼록 묵혀 두었던 거울이랑 유리창도 닦았다. 김치를 담갔다. 식료품 시장을 봐서 마른 반찬도 만들었다. 고기도 절여두었다.
오늘 늦은 시간에 친구는 제주공항에 도착한다. 국제선에서 환승하니 시간 선택이 좁아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이다. 준비가 잘 되었나 둘러보니 아주 만족스럽다. 이만하면 내가 늘 그 친구한테서 받아 온 서비스에 대한 갚음은 충분히 될성 싶다. 그런데 나는 공항에서 편리하게 내가 직접 모셔 올 수가 없다. 늦은 시간의 운전은 이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 친구도 알 것이다. 내가 이미 두 해 전부터 운전은 제한적으로만 한다는 고백을 했으니까. 그럼에도 내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처음에는 먼 길 왔기에 한 시각이라도 빨리 집에서 쉬고 싶을텐데 택시 타기 위하여 긴 줄 서서 기다리는 고생을 하게 해야할 걸 생각하니 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이 아니었다. 친구에게 불편하게 하여 내 마음이 무거운 건가. 아마도 아주 작은 부분은 그게 아닐지 모른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일 거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은 마음이 분명하다. 말로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그게 현실에서 행동으로 명확하게 보여진다는 건 왜 이렇게 싫은 건가. 씩씩하게 나를 찾아 온 친구에게 편리함으로 신속함으로 젊은이들의 능률로 당당하게 맞이하고 싶다. 이건 안되고 저건 저렇게 중간중간 쉼을 두고 시간도 장소도 가려가면서, 맞이하는 이 만남이 쭈굴스럽다. 팽팽하지 못하다.
이런 만남만이 허용됨을 이제는 받아들이고 그거면 아주 감사하고 고맙고 특혜인 거라고 알아야 한다. 어둠이 사방으로 퍼지면 실내에서 즐기면 된다. 밝음의 시간에 기운차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들도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움인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알량한 허세를 날려보내려고 징징대고 있다. 할 수 없음의 한계를 내가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친구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일텐데. 지금 나는 내 친구의 앞길을 닦아주는 먼저 매맞은 자의 길인데도 왜 우물쭈물이 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