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사, 그리고 신승균 묘역까지

온릉 입구
온릉 입구

지루한 연휴 중인데 마침 문화해설을 하는 지인이 초대해 역사 여행에 동참했다. 온릉은 처음 들어보는 능이라 이 기회가 아니면 혼자 갈 일은 없을 것 같아 호기심도 생겼다.

* 흥국사

구파발역에서 2시에 만나 카풀로 흥국사에 먼저 갔다. 영조 대왕이 어머니를 보러 가던 중 폭설로 하루 자고 갔다는 절이다. 왕실과 관계 있는 절은 대웅전 앞에 왕이 머물고 간 법전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국화 시주를 팔던 절 도우미들이 불상은 함부로 사진 찍으면 안된다는 따끔한 훈계를 했다.

* 온릉

온릉은 장흥 길 가에 있다. 3년전에 개방했다. 원래 주차장도 없었는데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받으면서 개방 절차를 밟은 것이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으로 추대된 중종의 정비 단경왕후 신씨의 능이다. 아버지 신승균이 영의정으로 여동생은 연산군의 부인이 되었는데 딸이 중종의 부인이 되었으니 막강한 세도가였다. 중종 반정 때 신승균이 반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척살 당하는 바람에 부인이었던 여동생이 폐비되어 낙향하고 딸도 역적의 딸이라며 왕비가 된지 7일만에 낙향하는 신세가 되었다. 왕비 복위 움직임도 있었으나 왕이 반대해서 무산되고 혼자 71세까지 살았다. 중종이 신씨가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들어 왕궁에서 잘 보이는 수락산 바위에 치마를 걸어 수락산 치마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온릉은 분위기가 아늑하고 한번 쯤은 돌아볼만한 곳이다.

* 신승균 묘역

신승균은 거창 신씨로 좌의정, 영의정까지 올라갔고 여동생과 딸이 왕실에 왕비로 들어갔으니 세도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할만하다. 여동생과 딸, 양손의 떡, 꽃놀이패처럼 보였으나 쿠데타군이 어느 한쪽을 택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연산군이 총명하다고 말해 여동생 편을 든 것이 자신의 죽음과 폐가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후손이 돈을 모아 생가를 복원하고 묘역을 잘 조성해 놓았다. 네비게이션에도 안 나와 찾는데 몇 바퀴 돌았다. 신승균 부인 비석에 보통 사람은 有人(유인)을 포함 어느 누구 씨 지묘라 하여 8자로 이름이 새겨지는데 남편이 1품이었으니 앞에 유인 대신 정경부인이 붙어 10자가 되었다. 2품이면 정부인, 3품이면 숙부인이 붙는다. 

신승균 묘역
신승균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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