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상은 천복天福이다. 그중에도 첫인상이야말로 평생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동일한 정보라도 먼저 제시된 정보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을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 한다. 첫인상도 이 초두효과의 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 경제 전문 매거진 INC 닷컴이 한 기업에서 미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첫인상을 결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7초라고 한다. 응답자의 69%, 즉 미국인 10명 중 7명은 심지어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기 전에 이미 첫인상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첫인상의 단서를 미소(53%), 예절(53%), 언변(49%), 시선 마주침(49%), 경청(48%), 좋은 냄새(46%), 좋은 대화 유지(46%), 보디랭귀지(44%), 목소리 톤(44%), 의상(42%) 순으로 확인했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 조사했어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통계에 의문이 간다. 사실 첫인상을 결정짓는 제1의 조건은 외모가 아닐까? 일단은 잘 생겨야 좋은 인상을 줄 것이다. 외모의 우열이 능력의 우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 외모지상주의外貌至上主義는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외모가 운명을 좌우한다는 결론을 내려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참 못생겼다. 미련하게 생겼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체구도 곰처럼 퉁퉁하고 하는 짓도 둔했다. 생긴 것도 그러려니와 재주도 곰이었다. 가정형편도 내놓을 만한 것이 없었으니 고마운 별명도 아니지만, 틀린 별명도 아니다. 내세울 것이 없을망정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이야 나라고 없겠는가? 무턱대고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많이 아는 것처럼 깝신거리고, 무엇이든 잘 할수 있는 것처럼 나댔다. 쥐꼬리만큼 알면서 거기에 내 마음대로 부풀리고 덧붙여 많이 아는 것처럼 포장도 했다. 그러다 보니 느는 것은 말재간이요, 사라지는 것은 겸양과 겸손이었다. 여기에 딱 알맞은 직업이 무엇일까? 선생이었다. 그것도 정규학교 선생보다 인기로 먹고사는 학원 강사였다. 원래 내가 원하던 직업이 아니다. 선생을 하겠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내 첫인상이 만들어 놓은 내 성격이 나를 이 직업밖에 할 수 없는 인간으로 키운 것이다. 결국, 인상이 운명을 만든 것이다.

유대인의 지침서 탈무드에 보면 랍비 일라이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은 ‘키소’, ‘코소’, ‘카소’라고 가르치고 있다. ‘키소’는 財(재), 곧 지갑(돈주머니)을 말한다. 돈 사용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가치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코소’는 酒(주), 술잔이다. 어떻게 즐기는지를 보아 그를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카소’는 性(성), 곧 분노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물은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도 네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자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술잔은 그 사람이 쾌락을 대하는 방법이다. 쾌락이 주는 자극을 끝없이 찾아 방황하는 자는 본능을 제어하지 못해 결국 죄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술잔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노는 욕설과 혐오와 증오 등 악의를 분출하는 분화구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교만하게 된다. 쉽게 화내지도 않고, 쉽게 화를 푸는 자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첫인상을 볼 것이 아니다. 시간을 가지고 財재· 酒주· 性성 이 세 가지를 다루는 모습을 관찰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옛 당대唐代에는 身·言·書·判신·언·서·판 이 네 가지가 출중한 사람을 관리로 기용하였다고 한다. 身신이란 남을 대하는 몸차림이나 몸가짐이 당당하고 떳떳하여 그 아름다움이 본받을 만한 사람을 일컫는다. 言언이란 말씨가 부드럽고 매끄러워야 하며, 그 내용이 이치에 어긋남이 없으며 거짓이 없고 정직한 사람을 말한다. 書서란 글씨는 반드시 해서楷書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해서楷書는 정해正楷, 정서正書, 진서眞書라고도 부르는 동한東漢시대에 만들어진 글씨체다. 획을 가로 세로로 반듯하게 만들고, 글씨 전체가 정사각형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글씨체는 오늘날까지 한자의 정체正體로 간주한다. 해서체(楷書體)는 글쓴이의 성정을 나타낸다. 判판이란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힘이 월등한 사람을 말한다. 즉 시시비비에 착오가 없는 냉정한 판단력을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은 중국 당나라에서만 지켜졌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옛 어른들은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아왔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기준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도 없고 남은 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라도 첫인상에 얽매이지 않고 유대인의 財·酒·性재·주·성과 당나라 사람의 身·言·書·判신·언·서·판을 명심하여 그대로 살면서 지난 날의 허욕을 씻고 겸손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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