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868호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 시인 이해인의 <9월의 기도>에 나오는 시(詩)의 일부다. 세상에 나오는 모든 詩는 '마음에 뜻한 바를 드러내는 말하기의 한 방식'이라고 들은 바 있다. 고추잠자리도 나를 알아 볼 수 있도록 얼굴 팬티(마스크)를 벗고 9월의 길로 나서고 싶다. 코로나 재유행과 무더위와 폭우(暴雨)에 지쳐 잠 못 이루는 밤들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하룻밤 새 성큼 그저 시간이 매몰차게 흘러 정열적인 8月이나 넉넉한 10月보다 더 좋은, 로또 같은 9월이 왔다.

​기후 변화의 조짐이라는 ‘N차 장마’때문에 꽉 닫았던 창문을 오랜만에 활짝 열었더니 실바람이 산들산들 춤추고 먼저 와 준 가을 하늘이 한층 높아졌다. 미증유(未曾有)의 공포스러운 병마(病魔)에 신음(呻吟)하던 녹색(綠色)의 초록 세상은 곧 붉은빛 갈색 추억으로 물들고 말 것이다. ​정연복 시인의 시적(詩的) 표현처럼 가을을 데리고 온 9월의 신비한 힘을 느낀다.

​오지랖 넓은 짓이지만 한 장 넘긴 달력의 9월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주고 반갑게 손을 내밀며 진지한 ‘아이 콘택트(Eye contact)‘을 원했지만 무표정이다. 세상 만인에게 공평한 자연의 법칙 중 하나 쯤 소유할 수 있거나 이름 조각(彫刻)이 가능하다면 筆者의 계절은 가을이고, 조건은 9월이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혼자 걷기 좋은 9월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은 개인별 성향에 따라 다양하고 수없이 많다. 筆者의 경우, ‘벽오동 심은 뜻’이다. 언제나 가을의 숙제였다.

​술 맛이 오묘한 9월 먼저 술기운이 오른 친구들이 '벽오동 심은 뜻과 봉황의 존재를 아는가?' 별 의미도 없이 질문한다. 그럴 때마다 장자(莊子)의 사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혼자 질문하고 답해야 하는 ‘벽오동 심은 뜻’보다 한 잔 더 하고 싶다는 애교스런 수작(酬酌)이라는 것을 산지식으로 체득(體得)했기에 음유(吟遊) 시인이자 가수인 김도향이 불렀던 ‘벽오동 심은 뜻은'이라는 노래를 중얼 거리며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한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뇨...“ 문득 생각하면 노래의 메타포가 단순함에도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 검색의 그럴 듯한 뜻풀이만으로는 ‘벽오동 심은 뜻’과 ‘봉황’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전국시대 장주(莊周)가 쓴 <장자>의 {추수}편에 "남방에 원추라는 새(鳥)는 벽오동이 아니면 앉지도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도 않고 예천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다"라는 구절(句節)이 나온다. 원추는 봉황을 말하며, 봉황이 앉아 쉬는 상서로운 나무가 오동(梧桐)이다. 연실(練實)은 빨라야 60년에 한 번 맺힐까 말까한 대나무 열매이며 예천(醴泉)은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에 솟아나는 샘을 말한다. 한 마디로 봉황(鳳凰)은 태평성대에만 나타난다는 전설의 새(鳥)다.

​반면 벽오동은 쓸모는 별로지만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나무이다. 누구나 오기를 고대하는 태평성대의 상징이 용이나 호랑이가 아닌 봉황인 것이 흥미롭다. 봉황은 흥이 나면 노래를 부르고 날개와 꼬리로 상생의 춤을 춘다. 벽오동은 한 해에 1m가량 자란다. 20m까지 성장해도 줄기가 푸르다. 이파리는 오동잎처럼 넓고 손가락처럼 잎 가장자리 끝이 3~5개로 갈라진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는 가지 끝에 엷은 노란색을 띠는 꽃을 피운다. 입추(立秋)가 지나면 벽오동은 잎이 노랗게 물들면서 한 잎씩 지기 시작한다.

​옛 사람들은 "오동일엽낙 천하진지추(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 벽오동 한 잎이 떨어지니 세상에 가을이 다가왔음을 안다"고 변설했다. 우리는 일기예보나 뉴스를 보고 알게 되지만 옛 사람들은 나뭇잎 한 조각이 떨어지면 가을이 왔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 휘장 속 무궁화를 감싸고 있는 꼬리 긴 새도 봉황이다. 봉황을 직접 본 사람은 없다.

도시남녀(都市男女)의 괜찮은 삶을 위한 책 처방전 <밤의 인문학>에 이런 글이 있다. “인생의 소설을 다 읽지도 않고 별안간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자는 행복하노라.“ 집배원처럼 가을을 배달해 준 고마운 9월도 벌써 3일째다. ‘봉황을 보고 싶다'거나 벽오동 심은 뜻‘은 괜찮은 9월을 위해 잠시 덮어두자. 스치는 가을바람에 차분해지려는 몸과 마음은 시원한 맥주가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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