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부인하고 싶고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려고 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소한 내 우둔한 모습이 있다. 운동에도 활동에도 동작에도 그런 모습을 보인 지가 이제 몇 해가 되었지만 특히 두드러진 건 뇌의 작동이다. 건망증이 살짝 애교처럼 실생활에 나타나곤 하는 게 이제는 아예 그 잊어버림으로 낭패당하지 않도록 생활습관을 바꾸고 환경적인 장치를 해두기 시작했다.

​내 작은 생활에서는 내가 조심하는 걸로 별 큰 사고는 없는데 답답한 건 확실히 대화에서 명민하게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는데 있다. 오늘 낮에 좀 당황한 일을 겪었다. 나는 혼자서 이 일로 속상하고 내 의식에 혹 문제가 있나 하는 반성도 했다. 한 문화권에서의 생활 가운데서는 별 것 아니지만 다른 제도 속에서 내가 익숙한 후에 다시 다른 제도 속으로 들어오면 그 불편함이 아주 크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그런 일은 다른 문화권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에게는 피할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이랬는데 하는 말은 내딴에는 조심한다고 해도 그런 말이 불쑥불쑥 나오는 경우가 많았나 보다. 좀 친숙해졌다고 판단한 이웃이 오늘 툭 경고음을 발했다. 이제 여기서 이렇게 오래 살았으면 그 쪽 이야기는 안할 만도한데 라면서.....

​오래 전의 내 새댁시절의 일이 생각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시골 양반자랑하는 집안으로 시집갔다. 만날 때마다 시집의 쓰잘데 없는 허례허식을 불평하였고 가풍이니 예절이니 하는 것들이 사람만 귀찮게 하지 무슨 소용이라고 하더니, 한 십년 지난 후 어느 날 부터는 본인이 자란 친정의 실용주의 편리주의가 사람의 품위도 인격도 망치고 삶의 아름다움도 해친다는 식의 준절한 비난을 퍼붇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너 그런 말 친정에서도 했니?" 하였더니 "왜 안했겠어.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너는 영락없는 그 집 귀신인가보다. 넌 네 시집 가풍으로 살고 우린 우리 가풍으로 살테니 잔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다나. 이 걸 생각하니 낮에 한방 쏘인 게 속상하지가 않았다. 서로 길들여진 환경에서의 반응인데 내가 두 사회의 질서에 잘 적응해야지 쓸데없는 소리는 절제하는 게 맞다. 허기사 우리 아이들은 나한테 늘 말한다. "엄마는 늘 한국 것만 좋다고 하잖아. 무조건 한국 게 좋지 엄마한테는" 

​다만, 내가 여기서 미국의 어떤 걸 이야기한다고 내가 미국 것에 빠져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아주었으면 싶다. 나는 거기 가면 늘 한국 것만 좋다고 말하니까. 다른 환경을 겪어 본 사람은 습관에 의하여 단점을 모르는 사람과 달리 더 좋은 걸 다른 예를 금방 발견하게 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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