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867호

자기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는 소설이나 시, 각종 Column이나 Essay를 만나는 사람은 행복하다. 대개는 기승전결의 결(結), 마지막 40~4페이지 정도의 과실(果實)때문이다. 어떤 글을 읽다가 잘 익은 과일의 즙처럼 촉촉하게 달달하면 먼저 온 몸이 솟구친다. 그 순간만큼은 반응(反應)하는 몸과 함께 그 어떤 글이라도 나의 것으로 느껴진다. 글을 읽는 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자신에게 말하고 들으며 무릎을 칠 정도의 전율을 느낀다고 해서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가끔 통째로 씹어 삼키고 싶은 글이 있다.

깊이 생각할수록 의미가 있어 멋이 있고, 오래 씹을수록 재미가 있어 맛있는 글들은 어쩌다 만난 세렌디피티(Serendipity), 혼자만의 행운이나 기회로 그냥 놔 둘 수가 없다. 자신이 공감한 만큼을 한 글자라도 더 표현하려고 원본 훼손의 작위적(作爲的) 첨삭(添削)이나 요약의 경박단소(輕薄短小), 중후장대(重厚長大) 여부는 주관적일 수 있으므로 첨삭불가(添削不可)다. 이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읽고 난 후의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꼼꼼하게 필사(筆寫)하고 막 닫히는 지하철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듯 가능한 신속하게 글다운 글을 만나면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전해야 한다. 맛집을 나오자마자 인증샷을 찍고 소개하듯이.....7월 20일(수) 김윤덕 주말뉴스 부장의 朝鮮칼럼 The Column이었다.

​18세 청년이 연주(演奏)한 ‘악마(惡魔)의 곡’은 어떻게 만인(萬人)을 울렸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873~1943)가 서른 여섯에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3번은 초인적인 파워와 기교를 요구하는 곡으로 악명이 높다. 겹겹이 쌓인 음표로 악보 해독(解讀)부터 어렵고, 광폭(狂暴)의 음역대(音域帶)와 스피드, 40분이 넘는 연주까지 고도(高度)의 테크닉과 집중력 없이는 완주가 힘들어 당대 최고 연주자들도 기피(忌避)했다고 한다. 일반 대중에게는 영화 ‘사인’의 주제곡으로 먼저 알려졌다.

아버지와 불화(不和)로 정신 질환을 앓던 천재(天才)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통해 “미치지 않고는 칠 수 없는, 악마의 곡”으로 묘사된다. 올해는 그 인기가 폭발적이다. 지난 달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18세 한국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결승 무대에서 연주해 세계 클래식 평단을 뒤집어 놓은 곡이 바로 이 곡이다. 영화 속 데이비드는 이 곡을 완주(完奏)한 뒤 정신을 잃고 쓰러지지만, 임윤찬은 땀에 젖은 머리가 살짝 헝클어졌을 뿐 기립 박수를 치며 열광하는 청중을 향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반 클라이번이 쏘아 올린 ‘윤찬 신드롬’은 2015년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이상으로 뜨겁다. 콘서트 티켓은 삽시간에 매진됐고, 그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3번 영상은 3주 만에 500만 조회 수를 돌파,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치츠가 뉴욕필과 협연한 영상을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만화책을 찢고 나온 듯한 외모, 선승(禪僧) 같은 어록에 클래식 문외한(門外漢)들도 마음을 빼앗겼다. “내게 클래식은 5분 만에 잠드는 수면제였는데 그의 신들린 연주로 내 막귀가 열렸다” “70대 일자무식인 나를 울린 연주” “나랑 동갑 맞아? 수학 문제 풀면서 이 연주만 몇 번째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같은 댓글이 줄을 잇는다.

​미국의 한 피아니스트는 반 클라이번 심사위원들까지 동원(動員)해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가 왜 독보적(獨步的)인지 악보와 영상을 비교해가며 분석했을 정도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인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만인의 가슴을 울렸을까. 영어 . 일어 . 중국어 . 아랍어 등 각국의 언어로 달린 댓글 9000개에 그 답이 있다. “100년 전 작곡가와 접신한” 임윤찬은 피아노 한 대로 “광야에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별이 뜨는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곤두박질치는 경제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어느 위대한 정치가도 안겨주지 못한 위로와 감동을 선사”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자체가 인생을 은유하는 드라마다. 클래식 전문가 배현정의 표현을 빌리면, 삶에 지쳐 일어설 힘도 없는 한 사람이 다시 용기를 내어 인생의 파도와 맞서 싸워나가는 이야기다. 러시아 특유의 우수와 서정이 흐르면서도 폭풍우 몰아치듯 질주해야 하는 장대한 곡을, 임윤찬은 허투루 날리는 음 하나 없이 맑고 건강한 타건(打鍵), 고요와 격정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표현력으로 압도(壓倒)했다. 만인의 가슴을 흔든 건 오케스트라와의 완벽한 조화였다. 피아노가 주인공인 협주곡(PianoConcerto)이지만, 임윤찬은 자신의 기교를 뽐내는 대신 오케스트라 모든 악기(樂器)를 동등(同等)하게 대하며 그들 소리에 귀 기울이고 호흡했다. 플루트의 독주가 시작될 때 피아노를 한껏 낮추며 연주자와 눈 맞추는 대목은 명장면으로 회자(膾炙)된다. 경쟁하면서 화합하고, 격돌하면서도 스며드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오케스트라와의 동행(同行)은 운명의 신(神)이 먹구름을 몰고 오는 마지막 3악장에서 절정(絶頂)으로 치닫고,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듯 전장(戰場)의 장수(將帥)처럼 돌진하는 청년은 마침내 가슴 벅찬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며 뜨겁게 산화(散華)한다.

​흩어진 소리와 음들을 율(律)로써 아름답게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악(樂)의 이치는 정치(政治)와 통한다고 했던가. 열여덟 살 임윤찬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취임 후 최대 고비를 맞는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꼭 한 번 들어보길 바란다. 음악의 제단 앞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불살라 연주하는 이 청년처럼 우리 정치인들은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 자신을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하나의 곡을 완주하려고 매일 15시간 피아노라는 거대한 골리앗과 싸운다는 이 청년처럼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서민들을 위해 그들은 숨이 턱에 차고 발에 불땀이 나도록 뛰고 있는지, 최고의 화음을 빚기 위해 자신을 한 없이 낮출 줄 아는 이 젊은 연주자처럼 한국 정치는 경청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부디 돌아봐주길 바란다. 딱 40분이면 된다. 나랏일로 바쁘시면 마지막 4분만 들어도 충분하다.

저작권자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