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부계사회의 우리 부모 세대는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골수에 박혀 있었다.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이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출산을 했다. 오공주집, 칠공주집이 생겨났다. 우리 대에 와서는 사람들에 따라 대를 이어야한다는 유교 관념이 아직도 강한 사람이 있고 그까짓 가문의 대가 뭐가 대수냐, 딸이면 어때 나는 딸이 더 좋더라 하는 사람도 있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면 집안의 투표자 숫자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 사람일수록 가문이나 대를 잇는 문제에는 관심이 희박하다.

내 친구는 최씨 가문의 종손이다. 대학을 나오고 ROTC장교 출신에 공기업의 본부장까지 지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넉넉했다. 아들을 원했지만 딸만 둘을 낳았다. 부인의 건강관계로 더 이상의 출산은 불가능해서 딸 둘로 마감했다. 딸 둘은 잘 성장하여 좋은 곳에 시집가서 잘 살고 있고 외손자들도 태어났다. ​이 친구와 술집에서 만났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가 종손인데 아들이 없다. 그래서 죽어 저승에 가면 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다. 그래서 말인데 최진실과 조성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아빠 성을 안 따르고 엄마 성을 따랐잖아. 아마 법으로 허용이 되는 것 같은데 나도 외손자 중에서 하나를 엄마 성을 따르게 하면 어떨까? 물론 내 유산을 그놈에게 주는 조건으로 말이야?” “글쎄 법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우선 아이의 부모가 동의를 해야지.” “내가 사위에게는 말하지 않고 아내와 딸들에게 우선 말해봤지” “뭐라고 대답해” “마누라가 아들을 못 낳은게 걸리는지 제일 반대가 심해 요즘이 뭐 조선시대냐고 대들더군.” “딸들은 뭐라고 해?” “딸들도 그까짓 대를 잇는다는 게 뭐 대수냐고 제발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집어 치우라더군.”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이 친구 입에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소리가 쑥 들어갔다. 시대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 고려시대는 모계사회였다. 외갓집 문중산에 산소를 쓰기도 했다. 고려의 재상 파평 윤씨 윤관의 묘가 그의 외가인 청송 심씨 문중산에 있어 조선의 부계사회와 부딪히면서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의 300년 산송사건의 빌미가 되었다. 부계사회에서 모계사회로 회귀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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