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콩물 때문에 애먹은 하루였다. 서울에서 필요한 서류 때문에 나갔을 때 딸이 점심으로 콩국수를 추천했는데 다른걸 먹었다. 혹시 딸이 콩국수가 먹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넌지시 물어보니 콩국수가 먹고 싶었단다. 딸의 말은 자기가 먹어보니 맛있어서 내게도 사주려고 했는데 다른걸 먹은 거였다 하필이면 그 전 날 두 끼를 다 면류로 먹어서....

양평에서 콩국수 잘하는 데가 있어 추천했더니 먹고 싶다고 한다. 퇴근해서 그 소리 들은 남편이 얼른 가서 사온다. 맨날 나에게는 사놓으라고 전화만 하더니 딸이 먹고 싶다니 본인이 가서 사오는게 얄밉다. 내가 맘보를 못써서 그런가 콩물 때문에 일이 생길줄 몰랐다.하.

아침 준비하면서 젖은 손으로 종이박스에 담긴 1회용 장갑박스를 자주 만져서인지 장마 때문에 그런지 눅눅한 박스가 떨어지더니 속 내용물이 확 밖으로 튀어 나왔다. 주섬주섬 박스에 넣어도 본래대로 잘 안들어 간다. 그냥 비닐봉투에 넣고 쓸까 하다가 박스테프가 있어서 그걸로 찢어진 박스를 붙이기로 하고 손을 보고 있었는데 풍산이 먹이주다 들어온 남편이 놀래서 뛰어 온다. 박스테잎을 가져가면서 이건 이렇게 써야 한다고 말한다.그간 박스테잎 요철에 자주 손이 찔려서 손으로 테잎을 적당량 끌어내서 가위로 잘라 쓰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쓰면 안되고 요렇게 써야 한다고 일장 훈시를 한다. 이래 쓰든 저래 쓰든 쓰는 사람이 편해서 쓰는데 웬 강요? 그렇게 쓰는 줄 알지만 내가 편한대로 쓰는게 더 낫지 하니 말 안 듣는다고 성질을 낸다. 누군 성질이 없나. 내가 하는 일에 도와 달란 소리 안하면 참견 말라고 빽 소리 질렀다.

기분 상한 남편 얼른 출근하겠다고 나간다. 나도 기분 나빠서 입 다물고 기차역 까지 바래다 줬다. 역에 도착해서 깨달은 것. 콩물 든 아이스팩을 안들고 나왔다. ㅋㅋㅋ 서로 기분 나쁜 마음 때문에 정작 가지고 갈 중요한 것을 안가지고 나오다니. 어이없어 하는 남편을 역으로 밀어 버리고 차를 몰고 오면서 드는 갖가지 생각.

딸이 점심으로 먹으려고 사다 달랬나? 그렇다면 다음 기차를 타고 갖다 줘야 하는데 지금 차 뒤에 실은 예초기를 수리점에 갖다 줘야 한다. 역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간신히 자리 하나 발견하 고 주차를 해놓고 달렸다. 주차장 끝에서 중간쯤 달렸을 땐 뭔가 허전했다. 에휴휴 아이스 백을 차 안에서 안가져 왔다! @#$%^&*%$#@

다시 절뚝거리며 차 있는 곳으로 달렸다. 급하면 왜 다리가 안 움직일까? 후다닥 물건을 집어 들고 전속력으로 달려서 에스칼레이터도 마구 뛰어서 올라갔다. 안내방송이 역 안에 퍼지고 있었다. 기차가 들어오니 손님들은 안전선 밖으로~ 하는 순간 매표소에서 티켓팅이 끝났다. 잽싸게 개찰구로 달려서 계단을 쿵광거리며 내려가 기차 앞에 섰는데 순간 문이 확 닫혔다.

아~ 어쩌지 표를 물리고 전철 타야겠구나 했는데 순간 아직 기차에 올라타지 않은 승무원이 나를 보더니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땀을 비오듯 쏟으며 승차하고 나니 입석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이스 백을 내려 놓고 출입구 계단에 털썩 주저 앉았다. 릴렉스 릴렉스 하면서 딸아이에게 문자를 날렸다. 기차 타고 가고 있다고. 양평에서 청량리까지는 30분 남짓이다.

어느새 내 려야 할 시간이 되었다. 통로 계단에 앉았으니 얼른 비켜줘야 한다. 환승을 해야 하니 교통카드를 꺼내고 준비를 마친 후 여유있게 1등으로 내렸다. 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역 밖을 나왔는데 손이 비었다? 아차차 교통카드 꺼내느라 아이스 백은 까맣게 잊어 버렸다. 다시 달리기! 열심히 달려 도착했는데 야속한 기차는 꼬리만 보이고 사라졌다.

기차가 도착하면 청소하시는 분들이 올라가서 청소 하는데 혹시 유실물센터에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역전 사무실을 찾아 갔다. 아직 청소하시는 분들이 사무실로 올라오지 않아서 아이스 백 행방을 모르니 연락처를 남기고 가면 찾아서 가부간 알려 주겠다고 한다. 연락처를 적어 주고 돌아서서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콩물이 든 아이스 백을 기차에 놓고 내렸다고 하니 순간 유쾌하게 터지는 딸아이의 웃음 소리~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나. 그냥 잊어 버리고 얼른 오셔서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한다. 힝힝힝.

전철을 타고 딸아이 집 정류장에서 내려 걷는데 전화가 온다. 아이스 백을 찾았으니 찾으러 오라고 한다. 그 소리를 들으니 기쁘면서도 맥이 탁 풀린다. 결국은 콩물은 찾아서 딸아이네 냉장고로 들어 갔다. 아이스 백이 좋은지 상하지 말라고 채워 넣은 얼음도 고스란히 녹지 않고 있다.

아침에 작은 투닥거림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다니. 다음엔 아침엔 싸우지 말고(?) 꾹 참았다가 저녁에 터뜨려야겠다. 이런저런 힘든 과정을 겪었는데 딸이 콩국수를 만들어 맛있게 먹으면 좋겠다.

양평 우리밀 식당에서 파는 콩물. 콩국수가 8,000원인데 콩물도 8,000원이다. 그대신 콩물 한 병이면 두 명이 넉넉히 먹고 조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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