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860호

반주(飯酒) 상차림으로 가볍게 이른 저녁을 먹고 경기 남부의 작은 도시의 번잡한 중심가를 산책하며 꿈(夢)을 화제로 삼았다. 대부분 꿈 이야기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없고 개연성(蓋然性)도 없지만 늙은 군인이 오래된 훈장을 자랑하듯 꿈 자랑을 하던 친구는 갑자기 편의점에 들어갔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꿈보다 좋은 해몽(解夢) 직후(直後)라서 로또 복권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 차렸다.

​한참 후 편의점을 나와서는 ‘인생역전(人生逆轉)'의 대박을 기대하라면서 어정쩡한 필자(筆者)에게 대박(?)의 숫자가 입력된 로또 복권을 불쑥 건넸다. 짐짓(?) 손사래를 쳤지만 막무가내였다. 혹시 모를 대박 행운의 로또 복권을 손에 쥐어 주었는데 강하게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공짜가 아닌가. 복권 판매 이익금이 좋은 곳에 쓰인다 해도 부자(富者)들은 외면한다. 人生 逆轉이 두려워 복권엔 도대체 관심이 없다. 그들의 무관심(無關心)에 괜한 오기(傲氣)가 발동되어 궁핍(窮乏)한 筆者의 인생을 逆轉시켜 놓고 싶었다.

​로또 복권 당첨 경우의 수는 814만5060분의 1이다. 즉 로또 1등에 당첨되려면 800만번 이상 로또를 사야 당첨이 될 수도 있다. 매주 로또 복권을 1만원어치씩 구입을 한다면 50년간 로또 복권을 26,000개를 살 수 있지만 1등에 당첨될 전체 경우의 수(數), 그 확률은 0.32% 불과하다. ‘수포자‘가 아닐지라도 상상이 안 되는 확률 따위를 아는지 모르는지 금요일, 또는 토요일이면 로또 판매점 앞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있다.

​가게 앞의 줄은 그 자체가 인테리어이기에 홍보 효과로는 최고다. 하지만 로또 복권 판매점 앞의 장사진(長蛇陣)은 코로나 - 19 초창기 마스크 구입의 긴 줄처럼 무언가 불편하고 씁쓸하다.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가끔씩 용기를 내어 긴 줄에 서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다. 아직도 삭제하지 못한 속물근성의 발로다. 확률적(確率的)으로도 허황된 도박(賭博)인지라 평상시 백안시(白眼視)했던 그 로또 복권을 잘 간직하고 집으로 돌아와 마누라에게 쥐어 주면서 도깨비 방망이라도 전달하는 것처럼 헤벌쭉 웃으며 숫자를 잘 맞춰 보라고 신신당부까지 하였다.

친구의 解夢을 믿고 싶었고 가당치는 않지만 이 또한 모를 일이다. 현실의 화두(話頭)를 꿈속에서도 놓지 말라 몽중일여(夢中一如)를 생각하니 묘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튼 로또 복권을 찾는 발길은 시대가 우울하고 불경기일수록 붐빈다. 긴 줄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로또 대박을 바라는 소박한 마음에서 우러난 희망의 발걸음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자체가 도리어 ‘정직한 절망'이다. 현실에 좌절한 사람들의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는 반사적인 행동의 발걸음이자 빈익빈 부익부 시대의 아픈 줄 서기에 불과하다.

​중국 한나라 때 온갖 지혜와 고사(故事), 속담과 격언(格言)이 총망라된 교훈적 설화집 ‘설원(說苑)’을 편찬한 작가 유향(劉向)의 열녀전에 이런 글귀가 실려 있다. "불척척어빈천(不戚戚於貧賤) 빈천에 슬퍼하지 않고, 불급급어부귀(不汲汲於富貴) 부귀에 급급해하지 않는다"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담백한 글귀다. 가난을 슬퍼하거나 부귀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삶에 만족하면서 초연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칭찬하고 비유하는 말이다.

​노나라 검루(黔婁) 선생의 부인 이야기다. 선생이 죽어 증자(曾子)와 문인(文人)들이 문상(問喪)을 갔더니 검루의 부인이 집 밖으로 나와 맞이했다. 曾子가 조문(弔問)을 하고 당(堂)에 올라 선생의 시신을 보니 창 아래에 시신을 두었는데, 벽돌로 베개를 베어 주고, 볏짚으로 자리를 깔았으며, 솜옷은 겉이 다 해져 있었다. 남루한 천으로 시신(屍身)을 덮었는데 머리와 다리를 미처 다 염(殮)하지 않아, 머리를 덮으면 발이 드러나고 발을 덮으면 머리가 드러났다. 曾子가 말했다. “천을 비스듬히 하면 시신이 다 가려질 것입니다.” 그러자 검루의 아내가 말했다. “비스듬히 하여 남는 것보다는 바르게 하여 모자라는 것이 낫습니다. 선생께서는 기우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살아서도 기울지 않았는데 죽어서 비스듬히 하는 것은 선생의 뜻이 아닙니다.” ​曾子는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곡(哭)을 했다.

당첨 번호를 확인했지만 筆者가 소유한 복권의 숫자를 모두 피해갔다. 대박은 스스로 길을 아는 법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5000원짜리 하나라도 적중(的中)하지는 못했다. 처음 경험한 일이지만 헛꿈의 허구(虛構)를 좇다가 인생의 잠시 시간을 낭비했다. 견딜 만한 가난이 筆者에게 삿대질하고 있기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귀 아프게 들은 말씀이지만 특별한 깨우침이 없었던 잠언의 성경 귀절(句節)이 퍼뜩 스쳤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단돈 2만원이면 우정과 사랑까지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막걸리 값으로도 충분할 터인데 ‘로또一夢’, 한 순간 대박을 꿈꾸었던 어리석은 筆者의 헛되고 헛된 탐욕(貪慾)까지 꾸깃꾸깃 휴지통에 넣으며 曾子의 哭소리를 들었다. 덥다 더워 ....

저작권자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