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도 ‘우수(雨水)’가 찾아온 이번 주말에도 제주에 있다. 그만큼 여러 이유로 제주도에 자주 내려오지만 골프장이나 올레길, 맛집이나 순회(巡廻)할 뿐 주마간산(走馬看山)이었고, 그나마 기록을 남긴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다 가다 주운 것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 삭제(削除)해야 할 사진만 수두룩하다.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 ‘빛의 벙커’에서의 감동, '제나(제주 나들이)‘ 클럽의 우연한 만남 등 두 번의 이야기를 CEO 토요편지에 남겼지만 여행기(旅行記)라 하기에는 허접한 내용이었다. 인생의 마지막 쿼(75~100세)를 살아 보려고 꿈꾸는 섬(島)에 대한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채찍했다. 코로나 이후, 마음 방역의 힐링섬으로 각광 받고 있는 제주도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준 <나는 꼰대로소이다>, 김동규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주 여행 일기를 읽고, 제주도(濟州道)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든 여행을 깊이 반성하며 꼭꼭 눌러 필사(筆寫)했다. 집 밖을 나서는 모든 여행은 언제나 즉석 메모나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마음이 요동(搖動)했기 때문이다. 세상사 언제나 그렇듯 내가 절실하게 갈망했던 것이라 하여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 읽고 간직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아름다운 제주에서 느끼는 소확행(小確幸)의 글이었다. 잘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처럼 염치는 없지만 筆寫한 全文을 요약하여 토요편지 독자(?)들에게 전(傳)하고 싶었고, '일 년 반 동안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그린 그림과 일기로 예술하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했다'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경험적 고백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멜’보다 더 흥미진진한 조선 사내들의 표류기를 아십니까?“ 생각만 해도 징글징글한 코로나 사태의 짜증을 삭이려고 지난 가을 제주도에 다녀왔다. 정방, 천지연, 천제연폭포 그리고 외돌개와 만나 반가웠고, 꼭 40년 전 기념사진을 찍었던 만장굴 거북바위에서 짜릿했던 허니문의 단꿈을 더듬었다. 섭지코지의 탁 트인 바다, ‘쇠소깍’과 ‘큰엉해안경승지’도 흔히 대하기 어려운 빼어난 경치였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들. ‘이타미준’의 작품인 물에 떠 있는 방주교회,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에 눈이 호사를 누렸고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는 오름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에 숙연했다. 유민 미술관에서 바라본 성산 일출봉이 압권이었고 해변 카페에서 바다 내음과 커피 향에 취했다. 때마침 이중섭 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감상하고 미술관 옥상에서 70년 만에 서귀포로 귀환한 이중섭의 풍경화 ‘섭섬이 보이는 풍경’ 속 섭섬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지난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엉또폭포’의 장관을 만난 행운이었다. 출발 당일 새벽까지 태풍 ‘찬투’가 폭우를 몰고 와 평범한 절벽이 웅장한 폭포로 변신했다. 김포공항으로 향할 때 세찬 비바람에 비행기가 예정대로 뜰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에 태풍을 원망했는데 불청객 ‘찬투’가 뜻밖의 귀한 선물을 주고 갔다. 일정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가을 햇살을 받아 나른하고 목도 컬컬해서 차를 세웠는데 사람 키의 서너 배쯤 되는 화강암 비석이 앞을 가로 막았다. ‘녹담거사 장한철선생 표해기적비’라고 쓰였는데 ‘장한철’은 못 듣던 인물이다. 비석의 규모로 볼 때 꽤 알려진 인사일 텐데 나이를 헛먹은 영감태기의 과문 탓인가 보다. 향긋한 커피로 목을 축인 후 ‘차귀도’와 ‘김대건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을 둘러보고 ‘성 이시돌목장’의 초원에서 진한 우유 맛의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한가한 오후를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 ‘장한철’을 검색(檢索)했다. 영조 시대 인물로 과거 길에 나섰다 배가 폭풍우에 휩쓸려 류큐(琉球, 오키나와)에 표류했던 경험을 ‘표해록’으로 남긴 제주 선비였다. 네델란드 사람 ‘하멜’의 제주 표류기는 귀에 익었는데 제주 사람의 외국 표류는 생소했다. 조선인의 표류기라! 당시에도 숱하게 뱃길을 오갔으니 충분히 있음직한데 왜 그런 책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지?

<中略>

?낙담한 동료의 사기를 북돋우며 함께 난관을 헤쳐 가는 장한철도 대단한 사람이다. 류큐의 무인도에서 안남(安南 . 베트남)의 무역선에 구출됐으나 그들에게 구원(舊怨)이 있는 (과거 안남의 태자를 제주 사람이 죽였다고 함) 제주 사람이란 사실이 들통 나면서 다시 바다로 쫓겨나는 등 숨 막히는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구사일생으로 상륙한 섬에서 맘에 둔 나이 어린 과부를 꼬드겨 하룻밤 로맨스를 펼치는 녹담거사의 주책에 실소했고, 표류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에도 곧바로 한양으로 과거 보러 떠나는 기개에 감탄했다.

<이하 생략>

기사 원문보기; https://cafe.naver.com/sbckorea/44788

저작권자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