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키우기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사랑해'란 말을 편안하게 해 본 적도 없고 자주 듣지 못했다.

꼬마랑 살면서 귀가 간지럽고 마음 속이 울렁거리는 묘한 기분이 드는 '할머니 사랑해~'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을 듣게 되었다. 그 말은 내 얼굴까지 간질여 대고 귓속은 물론이고 가슴도 마구 흔들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은지, 준비 없는 나를 세차게 동요시키는 말이었다. 뜻 모를 웃음만 지으면서 대뜸 오동통한 꼬마의 볼을 잡고 흔들어 주는 게 다였다.

어느 날‘할머니는 나 안 사랑해?’그 말에 미안함이 생겼다. '할머니도 사랑하지~’ 작은 소리로 겨우 겸연쩍음을 감춘 대답으로 얼버무렸던 기억에 지금도 부끄러워진다.

이제는 아니다. 석 삼년을 매일 듣다보니 이제는 꼭 껴안아 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늘그막에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심심풀이 땅콩처럼 듣게 되다니 하는 마음으로 행복해진다. 꼬마의 혀는 솜털이 송송 난 귓불처럼 보드랍고 사랑스럽다. 시니어라는 딱딱함과 꼭 막힌 생각들을 전부 녹여내 준다. 꼬마가 웃으면 고맙고 예쁘고 기특해진다. 그래도 행여나 생각을 잘못 키울까 혼도 내지만, 다른 한 쪽 마음엔 다정한 미소가 그리고 용서가 냉큼 들어선다. 머릴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이며 이제 다신 그런 일 하지마 하는 여유가 생겨났다.

꼬마의 입과 혀는 하루에도 수십 번을 내게 신비스러운 행복과 기쁨을 담아 나를 황홀하게 해준다. 신비스러운 명악이다. 예쁘고 고운 말을 거침없이 숨김없이 표현해 주고 할머니 힘 내는 묘약을 살살 녹여 먹여주니 말이다. 아직 더러움이나 나쁜 생각을 섞어 비빔밥을 만들 줄 모르는 순수한 마음을 듣고 사니 이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아무리 생각해도 연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좋은 날이 와 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만 가득해 진다.‘사랑해'란 말을 밥보다 더 많이 먹고 사는 시니어가 된 거다. 정말 좋다.

저작권자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