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를 만든다는 게 꼭 미남, 미녀 배우가 나오고 액션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도 관객의 공감을 얻으면 성공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평범한 보통 사람이 출연했다. 네티즌 평점도 10점 만점에 8점이 넘는다.

2013년에 최초로 아이폰으로 찍은 영화 ‘그 강아지 그 고양이’를 만든 민병우 감독이 2020년 1월에 내 놓은 영화다. 주연에 아버지 민형식, 어머니 이운숙, 그리고 본인이 나온다. 러닝 타임 83분짜리 영화다. 민 감독이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출연시켜 만든 작품이다. 2년여 제작 기간이 걸렸고 그 중 일년 동안 편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민형식은 1953년생이다. 대구 계명대학교 미술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37년간 미술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년 퇴임한다.

아들 민병우는 아버지 민형식에게 묻는다. “아버지, 앞으로 뭐 하실 거예요?” 아버지는 “다 계획이 있지”라고 말하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대구 사람들 특징으로 긴 말이 필요 없다.

놀랍게도 아버지의 계획은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꿈꿔온 아버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잘하는 사람을 통해 파리시청에서 라이센스를 받아 낸다. 아무나 몽마르트에서 그림을 그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당한 경력이 있어야 하고 경쟁률도 높다고 한다. 이들 가족은 드디어 파리로 향하게 된다. 친구들이 여비에 보태 쓰라며 금일봉을 보낸 장면이 가슴을 울리게 한다.

민형식의 그림은 풍경화다. 몽마르트에서 잘 팔리는 그림은 인물화인데 풍경화는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그림 값도 20 유로부터라서 큰 돈도 안 된다. 민형식은 낮에는 이젤과 그림 도구를 챙겨 몽마르트에 가서 그림을 그린다. 한 점 한 점 그림이 쌓이며 몽마르트 언덕의 한 명의 화가가 된다. 그러나 한달 동안 한 장도 못 판다. 한번은 한국 관광객이 반갑게 인사를 해서 팔릴 뻔 했는데 하필 그날이 파업하는 날이라 못 팔고 말았다. 그림이 팔리면 좋겠지만, 그림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다만 세계적인 화가들의 집합장소인 몽마르트에서 화가의 한 사람으로 하고 싶은 것을 했다는 만족감이면 더 바랄 것도 없다. “아버지,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말해야 하나. 끝내준다” 이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은 설명이 된다.

이 영화도 로드 무비 형식으로 프랑스의 곳곳을 보여준다. 에펠탑을 비롯해서 몽마르트 언덕, 그리고 파리를 벗어나 니스, 에즈, 에트르타 그리고 모나코까지 다양한 지역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하여 고흐의 작품과 무덤 등 그의 발자취를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고흐가 죽기 직전에 정열적으로 그린 ‘까마귀가 있는 밀밭’의 실제 장소를 바라보며 “우리가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거든. 멋진 작품을 남기고..”라고 말하는 아버지 민형식의 모습은 영화의 진한 명장면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미술 선생 출신 답게 루브르 박물관부터 모네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로댕 미술관까지 다양한 미술관을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영화 속에서 고흐부터 샤갈, 모네, 달리, 로댕까지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화가들의 다채로운 작품과 화풍까지 설명과 감상을 남긴다.

민형식은 카지노를 좋아한다. 슬로트 머신을 즐기는 수준이지만, 가는 곳마다 '카지노'라는 글자만 눈에 들어오면 들러 보려 한다. 로또 복권도 산다. 화가 모네도 복권에 당첨되는 바람에 노후에 편안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민형식과 어머니 이운숙은 티격태격 남이 보면 싸우는 줄 안다. 아내 이운숙은 말로 남편의 기를 죽이기도 하지만, 남편은 정작 웃음으로 받아 넘긴다. 대구 식 부부 관계다. 이 부분은 강한 사투리라서 자막으로 처리한 점이 좋았다. 파리 전철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고 경찰서에 가서 4시간이나 고생을 한 부분은 에니메이션으로 처리한 점도 좋았다.

이제 몽마르트까지 갔다 왔으니 아들은 아버지에게 다시 묻는다. “아버지, 앞으로 뭐 하실 거예요?” 아버지는 “다 계획이 있지”라고 말하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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