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10분 남짓 거리에 파사의 성이 있다.

파사의 성 '하늘 가는 길'
파사의 성 '하늘 가는 길'

3~4년을 저기 올라가 봐야지 하면서도 혼자 시간을 못 냈었는데 오늘은 과감히 방안을 탈출했다.

근처에 사는 모임회원에게 가자 했더니 할 일이 있다고 해서 주저앉을 뻔했다.

가끔 이렇게 소심해진다. 공포영화나 재난 영화를 보고 나면...

지난번 동생 내외랑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초입에 붙어 있는 안내도는 파사성의 유래와 유적 발굴에 관한 기록을 전해주고 탐방로를 알려준다.
초입에 붙어 있는 안내도 

파사성의 유래, 유적 발굴에 관한 기록과 탐방로를 안내해 준다.

 

파사의 성 정상에 이르는 길은 높지는 않지만 가파른 언덕이라 쉬엄쉬엄 가야 한다.

산악도로가 있어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볼까 하는 생각이 굴뚝 같지만, 엊그제 태풍에 나뭇가지가 많이 떨어져 있고 가파른 일방통행 길이라 내려오는 차와 마주칠까 염려되어 포기.

차 안전 수칙엔 비 오는 날 낙엽이 많은 곳은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오르는 길마다 떨어진 밤송이들이 즐비하고, 비에 길이 패어서 울퉁불퉁하고 빗물에 잔 돌멩이가 돌돌 굴러 내려온다.

차를 안 타고 걸어서 오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파사성 입구
파사성 입구

초입에서 10여 분 정도 오르면 보이는 파사성 입구지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느라 30분도 더 걸렸다.

천천히 걸으니 사방을 살펴볼 수 있어 좋다.

어느 나무는 뿌리가 하늘로 올라가 있고 거기에 누군가가 위험이란 빨간 리본을 붙여놨다.

참 감사한 일이다.

오르며 떨어진 밤송이를 발로 까보는데 알 톨이 하나도 없다.

밤이 영글긴 아직 이른가 보다. 아쉽다.

초입에 오르면 이렇게 돌로 성벽을 쌓아 놓았다.

옛 돌도 있고 최근에 보강한 돌도 있다.

제법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생각 외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가 보다.

성벽 옆은 잔디가 깔려 있고 시원한 바람이 올라올 때 흘린 수고의 땀을 식혀 준다.

너무 오래 쉬면 다시 오르기 힘들어지기에 사진만 몇 컷 찍고 다시 위로..

바로 위에는 정상이 있다.

오르면서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거기엔 굽이치는 푸른 강과 여주 다리가 보이고 천서리 마을이 눈 아래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곳의 해지는 노을풍경이 그렇게 멋지다는데 저녁까지 기다려줄 일행이 없어 아쉬운 발걸음을 떼야 했다.

이포보

다리 건너가 여주이다.

S자로 흐르는 강
S자로 흐르는 강

폭풍과 장마로 물이 탁하고 많아졌다. 개군면이 보이고 양평의 아파트도 살짝 보인다.

성벽을 오르다 보면 어느 시인이 쓴 시 하나가 덜렁 나무에 걸려 있다.
성벽을 오르다 보면 어느 시인이 쓴 시 하나가 덜렁 나무에 걸려 있다.

여기가 경치가 좋아 많은 사람이 성벽을 오르다 쉬어 가는 곳이다. 이포보를 바라보면서.

저 붉은 옷을 입은 여인과 죽이 맞아서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말문이 트여 30분 이상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여주 사시는 분인데 하루에 한 번은 여기를 올라온다고 한다.

지난번엔 어떤 남자분이 심하게 얽힌 실타래 하나 들고 올라왔다.

꼭대기 벤치에 앉아 몇 시간 엉킨 실타래를 풀고 내려간다는 말에 깊은 내공이 느껴졌었다.

이분도 범상치 않다.

파사성 정상
파사성 정상

탁 트인 전경이 눈을 편하게 해준다. 그늘이 없는 벤치지만 많은 탐방객이 쉬었다 간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목표였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지난번 못 가본 마애여래암각을 보고 갈까 말까 하는 갈림길 마음 때문이다.

300m를 걸어 내려가야 한다는데 올라오기가 겁났다.

이미 내 무릎은 위험신호를 보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산길에서 혹여 사고나 나서 고립될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세상에 호기심을 이기는 그 무엇이 있을까?

흔들거리고 바삭거리는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이 아닌 것 같은 좁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정표가 반긴다.

2개의 이정표가 길을 안내한다. 짧은 거리인데도 이정표가 있으니 반갑다.

사람 하나 없는 산길은 조용하기만 하다.

정상에서 5분 정도 내려오니 마애불이 보이고 그 옆엔 깨끗한 석수가 고여있다.

비가 와서인지 물은 흥건히 넘쳐 온 바위를 적시고 있다.

주변은 신발이 푹 적을 정도로 철벅거린다.

석수 옆에 놓여있는 쪽박으로 입안을 적셨다. 물맛이 상큼하다.

비가 많이 와 암벽에 아직도 물이 흐른다.

여래불을 지키는 거미. 수고가 많다.

 

오늘의 목표를 이룬 만족감을 안고 다시 파사성으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다리가 후들거려 내려갈 때는 성곽으로 가지 말고 옆길로 내려가야겠다.

내가 무릎 무릎 하는 이유는 관절이 안 좋아서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에겐 30분~40분 정도면 완주할 수 있을 거리이다.

파사성 성벽 옆에는 잔디가 잘 깔린 오솔길이 있다.

이 오솔길은 길이 완만하여 오르기는 쉽지만, 강의 전망은 거의 보이지 않고 하늘을 가릴 만큼 주변 나무가 울창하다.

 

성벽을 밟고 올라가서 오솔길로 내려오면 파사성 초입에서 두 길이 만나게 된다.

파사성 입구에서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 방향으로 가면 원형으로 돌아 전체를 한 바퀴 다 돌아볼 수 있다.

내려올 땐 또 다른 이천 사시는 분을 만나 수다 떨면서 내려왔다.

나의 이 오지랖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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