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잃어버린 사람이 더 큰 잘못이다

언젠가 TV를 보다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어느 동네 작은 집에 혼자 사는 할머니의 사연인데 이 할머니의 집은 많은 이웃사람이 모여서 노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비슷한 나이의 김 할머니도 친구이고 옆집 뒷집 아줌마들도 즐겨 모여 수다를 떠는 둥 동네 사람과 아주 화기애애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분이었다.

시력이 나빠진 76세의 이 할머니는 젊어서 남의집살이를 하거나 달걀 노점상을 하며 한푼 두푼 모아놓은 돈이 5만 원 권으로 1.000만 원이 있고 만 원권으로 100만 원쯤 있었다고 한다.

이 돈은 이제 눈도 나빠지고 나이도 들어 지방에 사는 딸네 집 근처로 이사할 전세자금으로 모은 돈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이 돈을 싱크대 바닥 장판지 밑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1.000만 원 돈이 사라지고 100만 원만 남았다.

1.000만 원이 누구에게는 적은 돈이라 할지 몰라도 할머니에겐 전 재산이자 딸 옆으로 이사 갈 자금이었기에 상심이 컸다.

도대체 할머니는 왜 1.0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은행에 두지 않고 아무나 들락거리는 집의 싱크대 바닥에 넣어두었던 것일까? 거기에는 또 사연이 있었다.

돈이 있으면 기초생활 수급을 못 받을까 봐 은행에 있던 돈을 현금으로 찾아 집에서 보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은 5.000만 원 정도의 재산은 있어도 받을 수 있다는 걸 할머니는 몰랐다.

할머니 집에 현금이 있다는 건 소문이 나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니 이제 그 집에 들락거리며 놀았던 좋은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용의 선상에 오르게 되었으며 삼십 년 지기 김 할머니도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다.

돈이 없어진 날 김 할머니가 할머니의 집이 지저분하다며 싱크대를 청소해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의심을 받게 되었으니 만약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너무나 억울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또한, 한 달에 두어 번 찾아와서 할머니의 은행 업무도 봐주곤 했다는 아들이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 아들은 어머니에게 돈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업무도 해 주었다면 몰랐을 리가 없으니 보는 이의 입장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었다.

할머니 측에서 김 할머니를 의심하니 김 할머니는 억울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경찰이 출동하여 마을 사람들을 조사해서 동네 인심도 나빠졌고 서로가 불신하고 의심하여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제 사이좋게 모이던 할머니의 집은 아무도 오지 않는 쓸쓸한 집이 되고 말았다.

할머니는 내 돈 찾아달라고 울부짖고 의심받는 김 할머니는 어떻게 삼십 년 지기 친구인 자기를 의심하냐며 화를 내고 어떤 게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딱한 사정이 되었다.

그런데 석 달쯤 지난 어느 날 동네 어귀에서 일하던 한 아저씨가 목격자라며 나섰다.

경찰에게 돈이 없어진 그 날 골목에서 손에 돈이 든 비닐봉지를 든 사람을 보았다는 진술을 한 것이다. 무슨 돈이냐고 물었더니 빌려온 돈이라고 까지 했다는 그 사람은 바로 김 할머니였다고 한다.

나는 시청하면서 극구 아니라고 항변하던 김 할머니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을지 놀라웠는데 김 할머니는 그런 일이 없었다며 아저씨와 몸싸움까지 벌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도 왜 100일이나 지난 다음에 그런 목격담을 진술한 것인지도 의심된다.

서로의 주장을 들으니 나도 자꾸만 이 사람 저 사람이 의심스러워지기만 했다.

범죄 전문가에게 그 장면을 보여주며 목격자의 진술이 사실일지 거짓일지를 묻는 장면도 나왔는데 일관성 있게 상황을 설명하는 경우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김 할머니도 그렇고 확신 없이 의심하는, 돈을 잃어버린 할머니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송은 해결되지 않은 이쯤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엄정한 수사를 바란다는 자막을 남기고 끝났다.

나는 기분이 몹시 안 좋았다. 무언가 진실이 밝혀져 산뜻한 결말을 보여주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만이 생겼다.

그저 서로 의심하고 범인으로 몰린 사람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하는 애매한 상황으로 방송을 마치니 너무나 추이가 궁금하고 찜찜한 느낌이다.

우리 엄마가 ‘무엇이 없어지면 누군가를 의심해야 하니 잃어버린 사람이 더 큰 잘못’이라고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의심이란 정말 무섭고 괴로운 일이다.

이번 사건은 지금도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게 진실인지 해결된 상황을 후속으로 꼭 알려주는 게 방송국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누가 돈을 가져간 범인일지 정말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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