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지 못 한 가혹한 운명에 마음 아파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로비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로비

 

지난 주말 예술의 전당 토월 극장에서 매우 가슴 아픈 연극 '오이디푸스'를 관람했다.

우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그리스 신화를 많이 알고 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많은 내용이 슬프거나 잔혹한 동화같이 가슴을 울리는 작품도 많다.

오이디푸스 역을 배우 황정민이 맡았다. 영화와 연극은 이미지부터 다른데 황정민은 영화에서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연극도 매우 멋지게 해내고 있다.

작년에는 '리처드 3세'에서 어찌나 능청스럽고 이간질 잘하여 결국 왕위에 오르는 모사꾼 역할을 해 놀라웠는데 이번엔 최고 비극인 오이디푸스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얼마나 열연을 펼쳤는지 그가 처절하게 독백하는 동안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야만 했다.

토월극장은 연극이나 뮤지컬 관람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좌석의 경사도가 있어 앞사람 때문에 보이지 않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 필요 없이 어느 좌석이나 편하게 볼 수 있다. 나는 무대 위의 배우 옷자락이 닿을 정도의 좋은 위치에서 연극을 감상했다.

이번 연극은 무대도 매우 효율적으로 연출한 것 같다. 한 번의 막이 오르고 중간에 두 번째 막이 걷혔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막까지 올라가니 무대가 아주 넓고 깊어 보이는 효과를 냈다.

오이디푸스는 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정말 슬픈 이야기다. 테베라는 나라에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 왕비가 살았는데 그들에게 신탁 예언이 내려졌다.

왕자가 태어나지만,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운명을 타고난다는 무서운 계시였다. 고귀한 왕자로 태어났지만, 예언을 두려워한 왕은 아기의 발을 묶은 후 산에 버리라고 명령한다. 오이디푸스는 '부은 발'이라는 뜻이라 한다.

그 일을 맡은 부하는 아기를 죽이지 못하고 목동에게 넘기고 아기는 이웃 나라 코린토스의 왕을 친부모로 알며 자라난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무서운 운명을 피하려고 코린토스를 떠나는데 테베로 여행 중 친아버지 라이오스 왕과 시비가 붙어 그를 죽이고 만다. 아버지를 살해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하나 맞은 것이다.

그 당시 테베에는 골칫거리 스핑크스가 있었는데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내어 답을 맞히지 못하면 사람들을 죽였다.유명한 수수께끼로 아침엔 네 발로 걷고 점심땐 두 발로 걸으며 밤에는 세 발로 걷는 게 무엇인지 물었는데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말하고 스핑크스를 없앴다.

테베의 영웅이 되어 그는 왕이 되었고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아들딸 넷을 낳고 나라를 잘 통치하는데 운명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은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7년간이나 테베에 비가 내리지 않아 역병이 돌고 백성들이 고난을 겪게 된다. 예언자가 전 왕인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찾아 복수하면 역병이 물러간다고 해서 알아보니 오이디푸스 자신이 범인이고 예언대로 친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절망한다.

어쩌면 그렇게도 가혹한 운명을 타고났을지 오이디푸스의 절규가 가슴을 후벼 파듯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사실을 알게 된 이오카스테 왕비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먼 방랑길을 떠나는데 그렇게도 기다리던 비가 테베에 쏟아지며 막이 내린다.

어떻게 나쁜 운명은 그렇게나 그를 따라왔을까? 예언을 무시하고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품에서 자랐다면 이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몹시 아팠다.

오이디푸스를 연기한 배우 황정민의 절규하는 목소리가 이 추운 겨울 너무나 슬프게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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