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가 없다. 누구에게나 ‘별의 순간’은 삶의 전환점이자 분수령이다. 그 별의 순간을 위해 '은근과 끈기'라는 채찍을 들고 매주(每週) 산고(産苦)를 겪으며 통산(通算) 800호에 이르렀다. 순식간이었다. 시작하기는 가벼웠을지라도 끊임없이 지속(持續)한다는 것은 무거웠고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토요일마다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한 발 더 나갈 수 있어야 했다. 15년 5개월 동안의 편지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아득한 것은 무뎌진 몸과 마음이 세월과 더불어 흘렀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만 여기 쯤에서 힘겹게 산 중턱에 오른 노루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멀고 먼 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기억의 시야(視野)는 흐릿하다. 특별히 타고난 글재주나 박람강기(博覽强記)는 없었지만 여기까지 이어 온 것은 나름 연결은 잘했던 것 같다. 막무가내(莫無可奈)식 연결의 선순환(善循環)이었다.

?'세상의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은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편집하고 학문을 인용(引用)하는 가공업자(加工業者)‘라 했으며 "21세기 지식이란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널리 있는 정보(情報)를 새롭게 편집할 수 있는 능력" 이라고 정의한 바 있는 명지대학교 김정운 교수의 선지식(禪知識)을 가슴에 새기고 용기를 냈던 것이다. 낚시 가서 고기 못 잡았다고시장에서 사 올 수는 없었다. 빈약한 소양(素養)과 지식의 취약함, 불편한 진실의 자아(自我)까지도 스스로 드러내며 어떻게 절충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세상에 없던 창조가 아니라 새로운 재발견을 위한 원고지 위의 펜을 든 곡예사였다. 그 펜은 외줄 타는 광대(廣大)의 막대기와 같은 것이었다. 막대기는 흔해빠진 것이지만 줄타기 하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이나 다름없다. 볼품없는 펜 하나 들고 머리가 이끄는 곳으로 연결하고 가슴이 말하는 대로 쓰고 또 썼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교차하는 세상의 고비를 넘고 있을 때마다 편지로부터 발현(發現)되는 지적(知的) 찰나(刹那)의 유레카, 비트코인을 채굴하듯이 어떤 발견을 기다리는 호기심이 지금까지 필자(筆者)를 지탱하고 버틸 수 있게 했다. 때론 진실이 아니거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과 부족함에 대한 회의(懷疑), 筆者를 몹시 흔들었다. 편지 쓴 사람이 내가 아닌 타인처럼 느껴져 낯설어 보이기도 하고 자괴감(自愧感)이 들어 후회막급인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과거의 ‘筆者’를 부정하고 싶어도 그러한 ‘筆者’가 이어져서현재의 ‘筆者’를 만들었기에 결국 ‘筆者‘의 모든 흔적(痕迹)들이 현재의 ’筆者‘와 연결된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굴곡이 있거나 없거나 삶의 모든 순간은 소중한 법이다. 편지 속에 드러나는 모습이 불편하거나 부족해도 그 모습이 筆者의 진실이었다면 그것을 부정하기보다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 똥이 민들레를 피워 내듯이 15년 세월의 배설(排泄)을 통과한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경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 등 쓸모 있는 삶의 기술이 늘었고 사고(思考)는 넓고 깊어졌다. 한편으로는 완고하게 늙었고 다른 한편 유연하게 성숙해졌다. 두 말할 것도 없이편지는 筆者의 스승(師)이었다. 손수건만한 땅 한 평도 없지만 늘 부자로 사는 이유는 편지 덕분에 삶의 높이가 과거에 머물지 않은 탓이다. 잡다한 세상사를 가지고 마디를 만들고 매듭짓는다는 장인(匠人) 버금가는 작업이라고 자부(自負)하면서 사사건건 ‘의미와 재미’를 버무렸다. 그리하다보니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인문적으로 소중하지 않음이 없었다.민망한 자화자찬(自畵自讚)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의 굴곡을 겪으면서도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며 평범한 일상의 탁월함을 위해 보다 인간적인 작업들을 해나가는 CEO 토요편지가 존재한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자랑스럽고 기뻤다. 자아도취(自我陶醉)의 착각일지라도 토요편지와 만남은 운명이었고 ‘별의 순간’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촌티 물씬 풍기는 열정 하나로 견딘(耐) 것이기에 筆者에게 있어 편지를 쓰는 일은 누구도 쉽게 경험하지 못할 경이로운 ‘학이락(學而樂)‘이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學而樂을 관통(貫通)하는 메시지는 "성장(成長)이 멈추는 순간 삶도 행복도 더 이상 없다"는 톨스토이 화두(話頭) ‘成長’이며 세상의 모든 것과 ‘소통(疏通)’하면서 다시 오지 않는 지금 여기에서 어제보다 더 ‘몰입(沒入)‘하기 위한 ‘죽음을 기억하는 삶’이다. 낯선 곳에 뿌리내린 희망,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처럼 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지금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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