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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에 피는 동강할미꽃의 전설
동강에 피는 동강할미꽃의 전설
  • 박승천 기자
  • 승인 2020.03.21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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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무심한 동강은 눈길 한번 주지않고, 여인들이 불렀던 아리랑을 읊조리듯 흘러만 간다
동강할미꽃

동강에 오면 늘 가슴이 먹먹해진다. 

산과 강이 절경을 이루고 풀숲에는 아름답고 귀한 꽃들이 자라고 있다.  꽃이 예쁜 탓도 있지만 강 앞에만 서면 한동안 말을 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저 강이 너무 푸르고 무심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이가 옆을 지나면 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저 강은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흐르기만 한다.  세상을 살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이름을 부르고 외쳐도 응답 없던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동강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눈길이라도 주고 갈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그래서 야속하다.

동강에는 아름다운 꽃 색을 지닌 동강할미꽃이 피고 진다.  동강할미꽃에는 전설이 전해 온다. 

동강가 어느 할머니가 어렵게 손자를 키웠다.  아이는 자라 어느덧 청년이 되었고 그는 때목군이 되어 강물을 타고 한양으로 내려갔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중수하면서 많은 목재를 조달했는데 영월 주위에서 벌채해서 강을 따라 실어 날랐다. 당시 때목을 한 번만 운반하면 일년을 먹고살 운임을 받았다고 한다. 때돈을 번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강물에 때목을 띄우고 그 위에서 먹고 자면서 강을 내려가는 일은 무척 위험해서 많은 이들이 강물에 휩쓸려갔다고 한다. 목재를 운반하고도 돌아오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가에는 주막이 늘어서 있었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은 주색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대부분 남자들은 돌아오는 길에 돈을 모두 탕진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님을 떠나보낸 여인들은 동강가에서 사람을 기다리며 가슴 아파했다.  동강가에서 불리는 많은 아리랑은 이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수하며 전국의 장인들을 불러모왔다. 궁궐을 짓기 위해 과다한 세금을 징수해야만 했고 사람이 서울을 드나들며 생활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들은 가혹한 현실을 풍자하거나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불렀고 이때부터 아리랑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지니게 되었다. 


동강할미꽃은 동강가에서 어렵게 키운 손자를 때목군으로 떠나보내고 그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실족한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고 한다. 그때 여인들이 부르던 아리랑을 읊조리는데, 지금도 강물은 흘러가고 있다.

흰색이 나는 동강할미꽃
산지에 자라는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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