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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29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29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20.01.14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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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위트 홈 (2)

몸이 물에 젖은 솜 같았다.

아스팔트 길 위에라도 쓰레기 더미에라도 풀썩 주저앉아 다리 뻗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물가물 보이는 사물들도 흔들흔들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시간은 하루의 일을 끝낸 시간이었다. 휴식이 손짓하며 어서 와 내 품 안에 안기라고 독촉이었다.

퇴근길 교외선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와 같은 방향의 기차를 이용하는 이웃이 활짝 미소 날리며 한 말이다.

굉장히 피로해 보이네요 너무 지쳐있어요 힘든 하루였나 봅니다.

별로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답할 만한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으로 에너지 절약형 답을 하였던 모양이다. 동병상련이며 이미 겪은 선배라 내 속을 거울 들여다 보듯 보았다.

이민 생활에서 제일 힘든 부분이 어떤 거였나요? 당연하게 돌아올 대답인 힘든 일임을 알면서 던진 싱거운 질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든지 이웃이 오히려 계면쩍은 표정이다.

부부가 24시간 함께 한다는 거예요.

이 대답에 오히려 이웃이 눈을 반짝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인데 정말 그러네요. 안 해본 노동일보다 더 힘든 부분이 하나로 붙어 다녀야 한다는 건 정말 사람 미치게 해요.

나에게서 가장 어려운 이민생활은 부부 일체라는 그 말이 말 그대로 공간으로 시간으로 전혀 예외를 두지 않음이다.

같이 일어나고 같이 밥 먹고 같은 차로 출근하여 하루 종일 함께 일하다가 같은 행보로 퇴근을 한다.

말하는 투도 슬슬 지루해졌다. 왜 늘 그 말만 하지? 화제를 좀 바꾸지.... 하는 생각은 부부 공동체의 필요 이상의 많은 접합 부분이 불거지기 시작된 시기였다.

웃는 모습도 지루해지고 많은 동작들이 그렇게 고정적이고 정착된 패턴이다.

출근하면 옆 가게의 델리에서 사 오는 똑같은 커피, 노 슈거 고 프림의 중간 사이즈 테이크 아웃 커피는 과학 현상의 공식처럼 비인간화의 단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문 열고 커피 한 잔 마시고 기계들을 가동하기 전에 워밍업 시켜 둔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종업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그들이 일을 능률적으로 잘 하기 위하여 일감들을 분리한다. 조금이라도 경비를 줄이기 위하여는 옷의 재질, 색상 세탁의 방법 그리고 납품일별로 정리한다.

나는 그런 일들을 아주 재빠르게 척척하고 있는 남편의 작업들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처음에는.

처음의 감동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돈 벌겠다고 안간힘을 써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자잘한 일들에 대한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가 변한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다

남편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가게를 누비며 이 일 저 일을 하는 아내가 안쓰럽기도 했고 고맙고 사랑스러웠다고 생각된다. 그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얼 그리도 극성스럽게 설쳐대나 가게 일 하 듯 요리에도 신경 쓰고 가정일에 관심을 가지지 하는 비판의 눈이 뜨이기 시작하였거니 추측한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 부부는 환경에 지고 말았다.

남편이 힘들어 세탁 한 옷들이 프레스의 다림질을 기다리는며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날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는 그 옷들을 땅바닥으로 밀쳐버렸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순하고 하찮은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다.

굳이 말하라면 쌓인 피로와 생활의 권태와 막막하게 꽉 막힌 현실로부터의 출구였다.

나와 같은 무게의 답답함을 가슴에 안은 남편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몸에 폭력을 가했다.

구두 발로 엉덩이를 찼고 나는 졸지에 바닥으로 넘어졌다.

넘어진 나를 보고도 아직 분이 덜 삭여져 씩씩거리며 그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쌍스러운 욕도 했다

그런데, 현실인데, 내가 당한 치욕인데, 그 사건이 꼭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 같다.

나는 남편의 그런 행동이, 처음 당하는 품위 상실이 우스웠고 희극을 바라보는 것처럼 가볍고 재미있었다.

전혀 현실감도 없고 나와 상관있는 일 같지도 않았다. 먼 데 아주 먼 곳에서 나에게 보내지는 무슨 메시지 같기만 했다.

툴툴 털고 일어났다.

마침 손님이 왔기에 손님과 가벼운 대화도 나누며 일을 했다.

싱글거리며 남편에게 말을 거니까 감정 변화가 어렵고 느린 남편은 오히려 아내를 이상스럽다는 듯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남편은 돌연히 한 자기 행동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사람 마냥 당황하고 있었다.

당신은 긴 세월 함께 한 아내를 그렇게 파악하지 못하느냐,

이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잘 아는데, 사건의 원인을 잘 아는데, 어쩔 수 없는 극한점에서 스트레스가 폭발된 걸 무어라 말할 것 같으냐?

그날 우리는 멋있는 식당에서 크랩 정식으로 제대로 품위 있는 저녁을 먹었다.

우리의 의지, 도덕, 품위 교양이 환경이란 골리앗 앞에서는 얼마나 약한가를 인정하자고, 우리는 결코 다윗이 될 수 없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환경을 바꾸자고,

하루 이틀에 이민생활을 접을 것이 아니니 이 환경에서 삶을 추구하자고, 이 곳 이 시간 이 사회가 우리의 삶이 숨 쉬고 춤추어야 할 우리의 세상임을 받아들이고 현재를 중심으로 생활을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남편이 하든 일에서 한 사람 더 고용하고 내 일을 도울 도우미도 고용하였다.

남편은 주 삼일 오후 시간 독립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남편의 독립 시간은 나에게는 남편 없는 내 독립 시간이 될 수 있었고 차차 나도 내 시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면서 훨씬 가벼운 이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덜렁이라 생활인으로 약점이 많은 나와 별나게 꼼꼼한 성격의 남편과의 원하지 않았던 잉꼬부부 시간들이 추한 모습을 보였긴 하지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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