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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28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28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20.01.09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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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전원이 단체로 훌쩍 떠나는 인생 여로 가 이민이다. 이 여행에는 한계가 없다. 시간이 채워지면 돌아올 수 있다는 아니면 돌아갈 수 있다는 약속이 없다. 적응이 어려우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느 시점에서 멈출 수 있는 가능성도 없다.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하는 말이 맞다.

​가족원 모두에게 생활의 패턴이 바뀐다. 아빠만 고생한다거나 엄마만 정신 버쩍 차리면 잘 굴러 갈 문제가 아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주부는 주부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 몫의 변화된 부분에 적응을 해야 하고 감당을 해야 한다. 가족원이라고 적응에 어떤 주어지는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적응을 잘 하는 사람 적응이 그럭저럭 되는 사람 정말 적응이 어려운 사람으로 갈리게 마련이다. 모두가 잘 적응하는 이민 맞춤형 가정이라도 적응 과정에서 스트레스는 있다. 전혀 스트레스 없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가정으로 정착하는 경우는 아마도 없다고 단언해도 될 것 같다.

​두 아들들이 여덟 아홉이라 초기에는 오히려 호기심을 발동한 것 같았다. 새로 배우는 언어 새로 배우는 문자 새로 나타나는 거리 새로 펼쳐지는 풍경들을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아이들에게는 적응이랄 것도 없이 처음부터 주어지는 삶으로 그냥 그대로 밀려오는 환경들을 받아들였다. 마치 서울의 작은 공간인 내 집과 잘 정리된 거리에서 시골의 도시선없는 큰 공간인 할아버지 댁으로 놀러 간 기분 정도랄까,

​우리 부부가 잡아먹을 듯이 치열하게 부부 싸움을 한 것은 이민 5년째의 어느 날이었다. 남편도 나도 우리는 생활환경에 대하여 상당히 미련한 편이다. 좀 불편해도 견딘다. 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적당하게 만족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약간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어도 인간 사회란 다 그런 것이고 인류 역사에서 완전한 평등사회가 있었던가 그래도 인간의 인식이 바뀌면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런 사고의 덕인지 처음부터 불튀기는 격돌을 하는 주위의 부부들을 보면 바뀐 환경을 부부가 싸움한다고 해결될거나 하며 회의적인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것이 그리 다를 수 없다. 우리 부부라고 남달리 현명한 사람들도 아니고 수양이 된 사람들도 아니었나 보았다. 그날은 정말 피로하였다. 돈도 싫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하늘 쳐다보면 행복할 수 있다던 옛 선비들의 시구가 나를 유혹했다. 모든 것들을 팽개치고 훌쩍 가게란 공간만 떠나도 휴식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일 산수갑산에 가더라도 가게 문 닫고 바닷가에나 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기분에 싸여있는 나인데 그날따라 왜 남편은 그렇게 의욕적으로 일하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남편은 일감과 일감에 붙어 작업 일정을 살피더니 이것저것 밀린 일들을 골라내었다. 금방이라도 손님이 닥칠지 모르니 해치우라는 말이었다. 남편의 그 말은 휘발유통에 내던져진 불씨였다. 어쩌면 1/60초의 시간도 안 되는 순간이랄 수 있는 시간에 나는 반응을 보였다. 고함을 질렀다. 평소에 내가 전혀 하지 않는 말, 나 잡아먹소, 했다,

​비교적 대응이 느린 남편은 말문이 막혀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아내로부터 받는 기습에 유머러스하게 대처할 줄 아는 애교 있는 남편이 전혀 못되었다. 아내의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는 부부의 공동의 책임이다. 물론 아내에게도 남편의 스트레스는 그러 할 것이다. 이 이성적인 행동을 하기 위하여는 지성이 작동하여야 하는데 즉각적인 행동은 감성의 부분이다. 이민 이후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던 아내의 돌발적인 치기 행동을 남편은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이 오가면서 말은 옥타브를 올리더니 드디어 언어가 아닌 동물적인 괴성으로까지 번졌다. 아무튼 붙어버린 불은 진화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에 우리는 가게의 단골손님에게 싸우는 모습을 들켜버렸다.

​부부 싸움에는 한국서도 잘 간섭하려 들지 않는다. 미국 사회에서는 타인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으며 부부 싸움에는 끼어듦이 거의 금기시된다. 그럼에도 그날 단골손님은 남편에게 한 마디 던졌다. 내 아내는 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집에는 가사도우미가 온다. 네 아내는 돈도 벌고 가사도 하지 않니? 무슨 낯으로 아내에게 큰소리칠 수 있니?

​그 손님은 언제나 나에게 친절하였다. 작은 일에라도 나를 도우러 애쓰는 사람이다. 이런 말도 했었다. 아침 이른 출근을 했을 때도 너의 일하는 모습을 보았고 낮에 잠시 상가를 지나칠 때도 너는 일하고 있었다. 저녁 늦은 퇴근을 했을 때도 너는 일하고 있었다. 내가 근면하게 일하는 모습에 굉장한 점수를 주었던 그 손님은 그 후 내가 실수로 옷을 망가뜨려 보상하겠다고 해도 나는 너 돈은 받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날 남편과 나는 각기 다른 관점에서 오랜만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용케도 아내가 참 오랜 시간을 참고 견뎠다, 이민 환경에서 가장의 역할에 대하여 자신이 너무 뻔뻔했다는 걸 반성하였다고 나한테 말했다. 나는 그 손님이 근면에 대하여 노력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진심 어린 성원을 보냄을 알았고 감동하였다. 그 사람과 보통의 미국 사람들이 근면에 높은 가치를 두었기에 미국 사회를 만들고 개인의 성공을 만들었거니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하였고 평화가 왔다. 작은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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