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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27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27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20.01.05 2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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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들 (7)

일에 즐거움이 없다. 미래의 시간이 밝지 못한데 아이들의 장래가 위태롭고 불안한 사회에서 무얼 바라고 열심히 일한단 말인가. 아침과 저녁 출퇴근하는 손님들의 하루 일과표에 맞춰 나의 일과도 변수처럼 따른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나는 주문 맡은 일을 해야 하므로 쉬는 시간은 아니다. 오히려 손님과 대면하는 시간보다 나한테는 더 본격적인 노동의 시간이었지만 사람을 대한다는 긴장이 없어서인지 아님 언어에 대한 긴장하는 마음이 없어서인지 일하는 시간이 더 편안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 나날들 가운데 마른하늘의 벼락으로 떨어진 한인사회를 향한 폭동이다. 확실하게 그 사회의 주인이 아니라 그 사회에 끼어든 이방에서 들어온 돌로 객체가 되었다. 왕따 당하고 있었다. 결코 후방일 수도 없는 비안전 지대에서 일상의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리석고 미련한 행동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살의 일정이 잡힌 순한 양이 한가하게 풀이나 뜯고 있는 것 같은 어리석음도 너무 싫었다. 무엇인가 조치가 필요하고 대처해야 하고 정확도 높은 저항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맴돌면서 도무지 일 할 마음이 없었다.

​머리도 가슴도 콜 타르만큼이나 찐득한 혼돈 상태인 내가 어정쩡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남편은 내일 어쩌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라는 말을 누군가가 했다잖아 그 말의 생산자는 잘 모른다는 설이 있긴 하지만.... 하는 우스개 섞인 말을 했다. 그렇지 ....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이란 그렇게 내 불안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꾸역꾸역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군중들 속에서 누구의 갈 길인지도 모르며 움직이 듯 나도 이미 몸에 익은 주어진 일들을 하긴 했다.

​저녁은 내가 하도 허둥대니까 내 멍한 눈이 어둠의 심연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싶어서였던가 남편은 슬금슬금 부엌으로 들어가 그의 전문 요리인 라면 한 솥 끓였다. 아직 아이들은 귀가하지 않았다. 학교는 파했지만 친구 집에서 놀다가 오겠다는 전화가 있었다. 잘 됐다 아이들이 집에 없다는 것이. 나는 그 시간에는 아이들을 대할 면목도 없었고 아이들을 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그 불안한 시간에 나를 더 강한 압력으로 압박할 것이니까 그랬다.

​그날만큼 아이들에게 미안한 적이 없었다. 이 불안한 사회 장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사회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못할 짖을 한 것 같았다. 미국으로의 공간이동은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거역할 수 없는 외부의 압력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렇게도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이 없었던가 아니면 아이들의 장래가 걸린 결정에 사전 준비가 게을렀던가 하며 반성했다. 한편으로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인간 능력의 한계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 시간 한국은 한창 경제가 성장하는 중이기도 했다. 세계가 둥근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떠오르는 용이었다. 그렇잖아도 희미하게 이민 선택은 별 볼일 없는 선택이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교민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깊은 불안과 아이들의 밝지 못한 장래를 들이대며 윽박지르는 것 같은 사건 속에서도 별로 회귀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건 한국 사회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적응이 문제가 아니었다. 왠지 그 길은 싫었다. 장애물의 반작용으로 내 인생이 흔들리고 싶지는 않았다.

반드시 삶의 한 가운데서 길은 있다. 그 길은 찾아지기 마련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에게 최적인 길로 길들여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확신으로 나를 곧바로 세우는데 아주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나는 낙천적인 성격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지구력이 있는 성격이 아니다. 성격이 급하다. 불안도 고통도 깊은 고민도 무한정 그 문제에 빠져있지를 못한다. 충분한 시간 아파하고 슬퍼하고 문제에 대하여 숙고했다면 어떤 결론이든 내린다. 결론이 좋으면 더욱 좋고 나한테 별 좋은 결과가 아니더라도 받아들인다. 받아들여 조금씩 해결의 최선의 길을 모색한다. 미제이면 미제인 데로 다음 좋은 시간을 기다리겠다는 것으로 일단은 그 문제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세상에서 스스로가 제일 잘 난 줄 알고 있는 하룻강아지 아들들이다. 여기저기 사회의 벽을 맨몸으로 부딪히며 거침없이 행동하든 겁 없는 틴의 남자아이들이지만 그날만은 기가 죽었고 숙연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은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로 포화되었다. 숨이 콱콱 막혀왔다.이미 정리된 줄 알았던 사건에 대한 내 자세가 이렇게 아이들을 통하여 한 번 더 흔들렸다. 그러나 어쩌랴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이 인류의 위대함이고 개인의 유일함 정체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는가.

​다음 날 이른 아침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말했 듯 태양은 떠올랐다. 아이들은 등교하였고 우리 내외는 일찍 가게에 나갔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낸 손님들은 하루 사용한 옷들을 나에게 맡기며 새 옷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했다. 그전 날 내가 한 일들을 사용하기 위하여 찾아가는 손님들은 내가 꼭 필요로 하는 달러를 지불해 주었다. 그 아침에 처음 만져보는 달러는 묘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그러고 보니 그 아침의 거리도 도로 위의 차들도 거리의 가로수도 가게도 사람들도 가게 안의 쟁여놓은 옷들도 적대적인 조소를 먹음은 것 같기도 했지만 새 다짐을 한 나를 향하여 옳지, 잘 했다, 반갑다, 그렇게 이 나라의 역사 속으로 녹여드는 거야, 초기 메이 플라워호의 청교도들도 그런 과정을 통하여 미국을 만든 거야. 생각 짧았던 폭도들도 이성을 찾으면 스스로를 반성할 거야. 속삭여주는 듯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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