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2-13 06:13 (금)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20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20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19.11.26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림픽 후(4)

시간은 많은 요술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교포 가정마다 첫 손님 그리고 두 번째 손님까지는 정말 마음으로부터 울어나는 반가움과 흥분함으로 대접했다. 당연히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앞서지만, 반가움에 보태어 고국이 아닌 타국 미국에서 회포를 풀 수 있는 색다름에 대한 치기적인 흥분도 다분했다. 교포들은 누구나 최선을 다하였고 최선을 넘어 출혈 수준의 과다하고 융숭한 대접을 했다. 손님들도 대체로 만족하는 듯 서로의 만족도, 행복도는 상당히 높은 지수였다.

​그러나 한국 사정이 엄청 좋아졌다. 이제는 정부가 해외여행을 권장할 지경에 이르렀다. 너도 나도 여행은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전의 10년 전만 하여도 부족한 외화사정으로 여행은 착실한 투자 성격이어야만 허락되었다. 반드시 생산적이어야 했다. 공부를 한다든지 시찰하여 특별한 선진의 정보를 가져올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시야를 넓히고 회포를 풀고 문화를 즐기는 목적은 다분히 문화 사치성에 속하는 특수계층의 놀이였다. 여행은 18세기 19세기 20세기 초반의 작품들이 유럽국 간의 문화교류에 의한 작품임을 본다. 선진의 서양에서도 상당히 제한적인 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문화환경이었다. 작품을 통하여도 여행이란 고급품 정서에 대한 꿈은 지성인들에게도 서민들에게도 스며든 선망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봄 안개 같은 드림 컴 투루가 주는 행복감은 교포사회에서는 따르지 않은 여건으로 무리수를 두었기에 한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현실과 실용이라는 인간의 물질 유혹 앞에서 너무나 빠르고 허무하게 무너졌다. 교포들은 슬슬 부담이 되었고 어떻게 하면 적은 경비로 미국 문화를 누려보겠다는 고국의 여행자들에게는 교포의 알차지 못한 대접에 불평을 쏟아내었다. 최선을 다 한 후에 들려오는 감사보다는 불평이 돌아오면 그 섭섭함은 배가 된다. 교포들도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손님 대접의 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한국 정서에 맞추려는 배려보다는 이제는 미국 현실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였다. 어차피 잘 살게 된 한국에서 교포들의 어려운 삶을 도와줄 것 같지는 않다는 현지 중심주의가 팽배해지기 시작하였다.

​여행과 고국의 손님은 어른들의 이야기이고 현실적인 문제는 아니라 기류 흐름을 읽으면서 양쪽이 거리를 잘 잡아가는 듯 보였다. 아니면 더 큰 문제 앞에서 이 문제는 2, 3등 혹은 4, 5등으로 밀려났는지도 모르겠다. 해방 이후부터 늘 있어왔든 영어 붐이긴 하지만 이제는 발음까지 완벽하기 위하여 조기 유학 붐에 단기 유학 물결이 교포사회로 밀려들었다. 당연히 고모 이모 숙모라 하여 조카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친척 집 방문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왕자님들 공주님들이 문제였다. 잘 차려진 밥상 받아먹기만 했던 귀공자들이 자기 먹은 밥그릇 씻어야 하고 웬만한 나이면 끼니 챙겨 먹어야 하는 가사를 분담하는 교포 가정에서 견디기 힘들어했다. 아이들은 친척의 생활 시간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굉장히 영악하다. 불평이 절대로 서비스 부실을 말하지 않고 원인은 뒤로 두고 다른 것으로 불평을 말한다. 특히 가정 형편이 넉넉하여 부모가 충분하게 체재 경비를 부담하는 경우는 그야말로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비화하여 영구 불화의 불씨를 남기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 가정은 그 집이 이민 후에 큰댁이 빠른 시간에 부를 이룬 경우였다. 동생네가 미국서 고생한다는 걸 알고 동생도 도와줄 겸 아이 교육도 할 겸 넉넉하게 아이가 필요하면 라이더를 주라고 주부는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경제적인 부담을 했다. 고마웠고 아이에게 정성을 다하였다. 그 댁에서는 그 조카에게 하는 부모들의 배려를 보고 주인 아이들이 불평이 대단할 만큼 힘껒 했다. 사랑하고 배려하는 건 그렇지만 열세 살의 다 큰 아이를 바라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 밖에서 보내야 하는 아이를 위하여 건강한 주부가 멍청하게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조금 더 부지런 떨면 손 아이에게도 잘 해주고 일도 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그녀를 들쑤셨다. 일을 했다. 일터에서 에너지를 뺏기고 나면 힘이 없다. 서서히 이 정도는? 하는 판단을 하게 되고 아이가 손수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게 교육적으로도 맞겠다. 미국에서 보통의 미국 가정에서 그 또래의 아이가 하는 일을 아이가 한다는 것도 가정교육이라는 생각으로 굳히게 되었다. 귀찮고 작은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왕자인 아이에게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숙모는 팥쥐 엄마 돈 빼앗는 비열한 계모 계열의 여자로 전달되었다. 교회에서 숙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조카아이의 친구들이 자기를 벌레 보 듯한다고. "아무래도 조짐이 좋지 않은데요."란 말을 했는데 그 학기가 끝나자 유학생은 고국으로 돌아갔으며 의좋았던 형제는 집안의 큰일에나 만나는 사이로 변해버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 160 일신빌딩 403호
  • 대표전화 : 02-2272-2999
  • 팩스(협회) : 02-722-49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승천
  • 등록번호 : 서울, 아05019
  • 발행처 : 시니어타임스(주)
  • 제호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 등록일 : 2018-03-14
  • 발행일 : 2018-03-01
  • 발행인 : 박영희
  • 편집인 : 김봉중(회장)
  • 편집국장 : 변용도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ondjkim@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