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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18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18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19.11.20 0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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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그 후 (2)

70년대 후반에는 교포들의 고국방문의 문이 활짝 열렸다. 항공료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 되면서 항공여행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두 나라 간의 오감의 시작은 먼저 교포들이 한국 방문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일터가 마음먹으면, 건강만 허락하면 오버타임 일할 수 있었다. 고국 방문하겠다고 몇 달간 열심히 오버타임 일하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안길 선물 한짐 싸 들고 귀국할 수 있었다. 실재가 그렇지는 않지만 우선 금의환향한 듯 겉모양으로는 떳떳한 모양새를 만들어 귀국하여 환영도 받고 기도 좀 받고 회포도 푸는 귀국 여행은 교포들에게는 다른 곳으로 휴가 가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 있는 여행이었다.

​그 무렵에는 미국에서는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국내에서는 더 고가로 매매되는 물건이 많았다. 소품으로 저렴하게 구매하여 하나씩 선물하면 좋아했고 환영도 받았다. 전화기 같은 것도 최신형으로 모양이 색다르면 환영받았다. 여성용 화장품 가방 의류 영양제 등등으로 종류가 풍성했다. 교포가 많은 대도시에서는 교포가 운영하는 큰 규모의 선물가게가 있었고 가게가 번창하였다.

​여행만이 아니다. 80년대부터는 이민자들의 형편이 그전과는 아주 달랐다. 80년대 초반까지는 일자리 찾아 가난을 벗어나려고 큰돈 들이지 않고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해보겠다는 이민군이었다. 이민 가방이라는 특별목적의 헐렁하고 뼈대 없는 가방이 있다. 그 물건 많이 들어가는 가방 하나로 미국 땅을 밟았다. 뭐든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하나 둘 장만하는 것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하였다.

​80년 대 중반 무렵부터 궁상스러운 이민의 시대가 사라지기 시작이었다. 물건들을 가져오진 않았지만 넉넉한 달러를 가지고 왔고 미국 사회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가져왔다. 누구나 먼저 이민 와서 정착한 친구나 친척 가족들이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선배 이민자들, 전혀 모르지만 이민 초기라는 이유로 지인이 아닌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경험을 전수받을 필요가 없었다. 미국 사회의 진입로를 맵을 통하여 척척 진행시키는 노련함을 보였다. 초기 기간 생활비도 넉넉하게 준비하였고 비즈니스를 하겠다면 비즈니스 종잣돈도 가져왔다. 선후배의 자리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후배는 선배들의 미국 사회 적응해 나가는 모습에서는 시간의 내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교포사회의 이민 선후배 관계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90년대 이민은 아예 이민이 아니라 이사였다. 이민 온 지 한 달도 안 된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댁은 가족들이 뉴욕에 도착하기 전에 형제를 통하여 단독 주택을 사 두고 있었다. 가족이 도착한지 일 주도 되지 않아 짐이 선편으로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한 주 정도 지나서 이제 짐 정리되었다고 놀러 오라기에 방문하였다. 깜짝 놀랐다. 거실은 물론 안방 하며 적지 않은 집의 공간이 빈틈없는 짜임새로 가구가 들어앉아 있었다.

​"이민하신 게 아니고 이사하셨네요. 연탄집게 빼고는 모두 가져오신가 봐요." 했더니 "연탄집게도 한국서 사용하였고 여기서 필요했다면 가져왔겠지요." 했다

선편으로 큰돈 들이지 않고 가져올 수 있었다면서 "한국의 집보다 이 집이 평수가 작아 몇 개 처분하고 왔는데 모두 가져올 걸 후회됩니다." 라는 대답이었다.

​그 댁은 1년 정도 미국 내 여행을 골고루 한 후에 리커 스토어를 인수하였다. 이런 여유만만의 후발 이민들은 먼저 와서 여적도 고생하며 살아가는 궁상의 선배 이민자들이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살던 집의 주택 가격 상승으로만 충분히 이런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그분들은 시운이 맞았다는 것으로 행운을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 절박하지 않고 주위를 차분히 살피고 초라하지 않고 기름기가 흐르고 타문화에 덤벙거리지 않고 여유로웠으나 일을 하기 때문이다.

​빌딩을 사들인다. 다세대 아파트를 사들인다. 어딘지 모르지만 수입이 넉넉하다. 이 그룹은 귀족 그룹이다.  서민들이 일하는 시간만큼 골프를 열심히 하는 듯 보였다. 교포들의 생활 수준도 천차만별의 양상을 띄기 시작한다. 교포의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민사회란 특수 여건으로 숨겨왔던 보이지 않는 사회계층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모습이 90년대에 꿈틀거리기 시작한 한인사회였다. 정작 일찍 이민 온 교포 가정은 그 시간에 넉넉함으로 자리 잡기는 어렵다. 일세대에서는 어려운 목표다.

겨우 정신 좀 차리고 살 수 있으려나 하는 형편인데 부자가 된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기 시작한 거였다. 미리 형편은 이야기되었겠지만 물질의 풍요로 지상낙원이라는 미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국 여행 온 여행자와 교포 사이에는 묘한 심리의 흐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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