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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12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12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19.10.27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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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을 시간표로 선물의 계절이 왔다. 가족끼리 친구들 사이에서 연인들이 복받은 사람들이 사회의 저변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계절이고 나누는 계절이다. 상가는 농군이 한 해의 추수를 걷어들이 듯 한 해에 배당된 각자의 몫을 챙기려고 기성을 부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상가에서 크리스마스 성수품들이 화려하고 요염하게 진열되기 시작하자 부지런한 곳부터 크리스마스 추리가 등장한다. 백화점이나 상가가 사람들의 발길로 바빠지기 전에 이미 크리스마스가 소비의 계절로 둔갑하려 상술이라는 길로 들어선다. 사람들의 시신경을 통하여 사야 하겠다는 사지 않으면 나만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유혹을 목적으로 요사부리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상징물들이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나타난다.

​나한테는 무의식의 사건이 잠재되어 있다. 나는 해마다 동지 전후의 가장 짧은 낮길이보다 11월의 날들이 더 짧았다고 기억한다. 11월의 해는 너무 인색하고 떠남이 너무 잽싸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런 이유가 아니겠나 한다.

11월에는 아직은 일거리가 줄지 않아 일해내기가 빡빡하여 시간에 떠밀리게 된다. 단거리 마라톤 선수처럼 일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해가 꼴깍 넘어가버리면 거리는 회색으로 답답해진다. 전등불 아래서 아직은 시간이 넉넉하리라 내 휴식의 시간은 좀 더 멀리서 기다리고 있겠거니 준비했던 마음이 어두운 거리를 보면 순식간에 덮치는 피로감과 외로움으로 고꾸라 질 듯 한다. 왜 피로가 외로움을 동반하였는가? 아마도 내가 국내에서는 그만큼의 피로감을 겪지 않았다. 피로가 이국이란 환경이 준 삶의 무게라 그랬을 것 같다. 이 기억이 지금까지도 11월의 낮은 12월의 날보다 더 짧다는 비과학인 생각을 하게 한다. 추수감사절 바로 그날부터 크리스마스까지는 완전히 쇼핑의 계절이다. 그 시간에는 보행의 속도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크리스천들이 많기는 하나 그래도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보다 신정이 더 큰 명절이다. 두 날은 다행히 겸사겸사가 가능한 날자다. 그 해 크리스마스와 신정 사이에 나는 한국의 가족들에게나 미국의 가족들에게나 내 아이들에게나 단 한 개의 선물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인사해야 할 모든 사람들에게 현금으로 대신했다. 사러 갈 시간이나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하도 오랫동안 물건사 본 일이 없어 쇼핑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상가에 가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무거웠다. 그 많은 상품들 중에서 물건을 골라야 하고 상품들의 종류 따라 다른 샤핑 몰 다른 가게로 가야 하고 같은 상품이라도 가게마다 다른 가격이 다르니 가격도 비교해야 하고.

​남편이 쇼핑도 살아가는 재미며 크리스마스 쇼핑은 별미일 거라고 막무가내로 백화점으로 데리고 갔다. 다른 건 몰라도 남편이 나한테 만은 선물로 하겠다고 했다. 나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갔으면 나도 남편 선물은 사리라 생각했는데 명절 막판의 백화점은 불경기라면서도 왜 그리 복작거리는지. 남편 혼자 백화점 들어가라 하고 나는 백화점 앞의 던킨도너츠 집에서 커피를 홀짝거렸다.

​내일이면 크리스마스다. 우리 가게 앞에서 늘 어슬렁거리는 홈리스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겨울 털 장갑을 끼고 선물 받았다고 입은 함지박처럼 헤벌쭉 벌리고 자랑이 대단했다. 그의 말로는 부자 형이 준 선물이란다. 나는 속으로 부자라면서 쩨쩨하게 달랑 장갑 하나냐 싶었다. 내 마음을 읽어 낸 사람처럼 "장갑이면 어때, 그것도 못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고, 부자라고 동생에게 좋은 선물하랄 수는 없지. 그 돈은 그가 번 돈인 걸 뭐."

좀 놀라웠다. 그리고 의식의 다름을 느꼈다. 준 사람의 인색은 모르겠으나 받는 사람의 자기 분수가 그를 돋보이게 했다. 그의 가난한 행색과 초라하고 누추한 몰골에서 내가 사람대우에 너무 경솔했지 않았나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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