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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11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11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19.10.23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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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던 무더위는 퇴색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정든 마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정 뿌린 나그네처럼 쉽게 떠나가지 못하는 여름은 마지막으로 9월에 인디언 섬머라 불리는 엉거주춤 어정거리는 더위의 몸부림을 한 후에야 떠나갔다. 기승 부렸던 여름의 뒤끝이라 가을은 더욱 청량하였고 신선하였지만, 어쩐지 힘겨루기 하든 상대가 갑자기 힘을 풀어버린 듯 허탈감도 주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프레스맨 일자리를 찾는 사람도 생겼다. 이미 일에 자신이 생겨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사람을 구하겠다는 내 이기적인 종업원 선택의 기준도 생긴 터였다. 남미인들은 전혀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데 한국인들은 인터뷰하면 대개는 점심 제공을 요구한다. 물론 그쪽 형편도 이해할 수 있다. 내외가 뛰어야 하는 사회에서 아내가 일을 하니까 남편의 점심 챙길 여유가 없다. 우리 형편 또한 그렇다, 가게 안에서는 내 손이 더 많이 가야 한다. 가게 문을 열어둔 시간에는 언제 손님이 올지 몰라 점심 준비할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게가 내 에너지 모두를 요구함으로 식구 먹거리 챙기기에도 힘겨운데 다른 식구 챙길 여우는 전혀 없었다.

​한두 번 좋은 사람 놓치고 나니 아이디어가 생겨 점심 제공 대신 점심값을 주급에서 더 올리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행히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굳이 한국 사람들이 점심을 요구하는 것은 백인 동네라 간단하게 한국 맛의 음식을 매식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란 데도 있었다.

​9월 노동절이 지나면 세탁소에서는 바쁜 철이 시작된다. 노동절은 9월 첫 주 월요일이다. 여름의 한가함을 즐긴 그나마의 작은 휴식을 마감하면서 다시 땀의 계절이 오고 있다는 마음다짐의 자세로 대개 노동절 연휴를 즐긴다. 이틀이지만 2박 정도의 늦은 휴가를 떠나기도 한다.

​첫해는 언감생심 그런 오아시스적인 휴가도 즐기지 못했다. 9월에 시작하는 대학의 달력에 맞추어 학생들은 8월 말이면 집을 떠난다. 잠시지만 떠남의 섭섭함에 조금은 느슨해진 부모의 지갑을 노린 학생들은 할 것 하지 않아도 될 것 가릴 것 없이 일단 세탁소에 맡긴다. 자녀들이 두고 간 세탁물을 부모들이 찾아가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대학생이 많았던 동네였던가 보았다. 우리 가게는 8월 중순부터는 바쁜 철로 접어들었다. 황금의 기회인 노동절도 부족하였던 잠에 포획되어 쉼의 시간에는 좀 더디게 천체가 운행되었으면 하는 바람만이 간절하였다. 워낙 드센 여름 시집살이를 거쳤기에 가을의 바쁜 철은 오히려 여유로움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여름의 면제품 옅은 색상의 옷에 비하여 가을 옷은 일하기가 약간 쉽기도 했다.

11월 넷째 주 목요일 감사절에는 뉴욕에 살고 있는 형제들의 가족들을 초대하여 오리요리를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따지자면 여유라기 보다 여름 내내 내 고생하는 시간에 시누이 내외가 많이 도와주었기에 갚음의 성격도 있었다. 그보다 앞서는 정신없이 살아온 그 시간에 잊혔던 가족모임에 대한 향수도 있었다. 그보다 더 깊게는 일부러 시간 내기 어려운 환경이라 이국의 명절에 우리의 정서를 없게 하려는 저절로 생긴 우리 명절 추석의 대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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