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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10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10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19.10.20 0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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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100도가 지속된 어느 여름날의 기억

독립기념일이 지나면 금방 여름은 본 모습이다. 떳떳하게 계절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다. 그 해는 폭서로 기록을 남겼다. 화씨 100도를 넘는 고온이 22일간 지속된 무더위였다.

​여름에 세탁소에서 일한다는 건 누구라도 달가워할 수 없는 노동환경이다. 찜통더위에서 발열 기구와 함께 일해야 하니 고생스러움에 대하여 말해봤자 입만 더 일하게 된다. 더위가 한창 극성인데 한국인 프레스 하는 분이 일을 그만두겠단다. 더위에 병날까 겁이 나니 여름은 쉬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족도 없는데 저축해 둔 돈도 없다. 건강보험도 없으니 아프면 큰일이란다. 형편이 가족들은 아직 한국에서 살고 혼자 미국서 생활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 눈 완전히 가린 이유다. 내가 진정으로 동의하면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아직 가게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데다가 일거리는 많고 그 기간에는 새사람 고용하기도 힘든 시기다. 날벼락만 같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나를 봐주어 나에게 편리하도록 변할 수 있는 게 현실이 아니다. 변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현실은 드디어 내 안에서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현실적인 눈을 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지, 까불어대며 유행어로 친구들과 하든 농지껄이가 살아 돌아온 언어가 되었다.

​다음 날은 새벽 세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가게의 앞문은 닫아두고 주차장으로 통하는 뒷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남편은 반바지 나는 비키니 차림으로 일했다. 한 사람 몫의 일을 우리 내외가 반씩 해내었다. 새벽 세 시에 시작하면 여덟시경에는 일이 끝난다. 일 끝나면 가게에서 대충 땀만 씻어내는 샤워를 한다. 옷을 제대로 입고 에어컨을 켠다.

처음 종업원이 그만두겠다는 말에 아찔하며 절벽에서 나를 밀어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한 주가 앙갚음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일에 몰입하다 보니 어느 사이에 후딱 지나버렸다. 한 주 동안 아무 사고도 없었다. 손님들은 우리 내외가 한 일에 불평도 없었다, 가게는 아주 조용하게 그리고 숨 가쁘게 잘 돌아갔다. 주말이 되었다. 종업원들의 주급이 지급되는 날이다. 몸이 감당 한 고생은 슬그머니 시간 속으로 녹아들었고 프레스맨에게 지불하여야 할 인건비만 내 통장에 적립되었다. 무사고의 기록과 함께 가게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가게 운영에 이 이상 더 큰 어려움이 오랴 하는 생각으로 안심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렇게 첫 여름 6주 동안 고되고도 알찬 훈련을 받았다. 가게의 일 중 프레스만은 우리 내외가 대신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고지도 정복하였다. 몰입으로 들어가는 길은 꽃길, 그 길은 거룩함 순수함 아름다움 고상함 비세속성으로 곱게 덮여진 길이겠지만 다른 모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문득해보았다.

​일만 한 그 시간에는 수면도 다음 날 일하기 위하여, 먹는 것도 일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하여였다. 그 기간에는 내 머릿속은 맑았고 내 마음은 평화로웠고 걱정도 근심도 없었다. 일은 함수의 수학공식만큼이나 정확하게 높아지는 숫자의 돈을 나에게 가져왔지만, 그 숫자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사랑과 신의의 신을 믿는 나에게 반드시 주어져야 하는 기득권이었다. 그러려니, 그렇게 쌓이는 것이려니, 눈 오는 날의 적설처럼.

​이런 수준의 노동으로 몰입이라는 친구가 나를 찾아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입이 나에게 들어오는 길을 나는 단순한 노동이란 모양으로 닦았고 몰입은 나를 또 다른 곳으로 인도하여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하였다. 이 생각은 단순하고 지루한 가게 일의 반복성을 긴 시간 참아내게 한 명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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