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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9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9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19.10.14 0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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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가게를 인수한 시기는 세탁소가 바쁜 시즌의 마무리 시간이었다. 4,5,6월이 봄 시즌인데 가게를 인수 한 날은 6월 말이었다. 일단 숨 가쁘게 바쁜 시간들이 좀 잦아들기 시작할 시점이다.

​선택의 여지를 배제한 절박감은 많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할 수 있다는 원천이기도 하다. 가게 운영에 전혀 자신감이 없었다. 가게의 손님은 동네의 명성처럼 고급 손님들이다. 서비스에 까탈스러울 것이라는 겁먹음도 있었다. 그럼에도 전 주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계약상의 도움을 거절하였음은 거래 과정에서 내 속이 많이 뒤틀려 나온 앙탈이었다.

​계절이 고개를 넘어가는 마지막 문턱에서 게으른 사람들이 마지막 옷 정리를 하는 듯 일거리는 몰려왔다. 햄퍼에 쌓이는 고봉의 옷들을 보면 저 일을 어찌할꼬 일이 무서워 울고 싶었다. 그래봤자 이제 곧 줄라이 포스,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정점으로 여름에 들어갈 것이고 손님들은 여름휴가를 떠나 일양은 줄어들 것이다. 여름 비철에 가게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우리 내외는 일하였고 일요일도 마찬가지였다. 가게 인수하고 한 주 만에 독립기념일이었다. 그날도 가게를 열었다. 미국의 4대 명절임에도 남편은 가게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고쳐야 될 곳을 고쳤다. 나는 미뤄 둔 바느질을 했다. 내일부터는 일양은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아이러니가 우습기도 했다. 빚지고 인수한 가게가 일거리 많아 돈을 벌어야지 빚도 갚고 내 목적의 경제적인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인데 일거리 줄어들 것을 학수고대하다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여도 그 일들을 어떻게 모두 소화하였는지 모른다. 독립기념일이 지나도 일감은 줄어들지를 않았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단지 일거리 보면 울고 캐시 레지스터에 달러가 쌓이면 웃고 손님이 일감 가져오면 징징 그렸고 세탁물 찾아가면서 돈 떨구어주면 좋아서 입이 벌어졌다.

​일감 줄어들어라 줄어들어라 하는 나의 바람에 어깃장을 두려는 듯 심술궂게도 여름에 들어서도 일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유는 두 가지였다.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에 집에 가면서 세탁물을 가져왔다. 학생들이란 부모 돈 한 푼이라도 더 받아 가려는 꾀보들이다. 돈 들여야 하는 세탁물들은 쌓아 두었다가 가져온 것이다.

그다음은 전 주인은 겨우 알파벳을 쓸 수 있는 정도의 영어였다. 일은 잘 했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소통에 늘 불안감을 가졌다. 한 번도 실수한 적은 없었지만 은근히 옷을 맡기고 찾을 때까지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말이 통한다는 것으로 안심이 되었다. 전 주인은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영수증에 겨우 손님 이름을 기록할 수 있는 정도의 영어였다. 눈치 백단의 실력과 완벽한 서비스를 모토로 가게를 10년 이상 운영했다. 상당한 재산도 모았다. 아들은 전 과정을 비싼 사립학교로 보냈다. 그러자면 눈물 나는 고생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마지막 가게를 떠나면서 글썽거린 눈물의 의미를 이해할 것도 같았다. 가게를 그만두었을 때 작긴 하지만 플러싱의 상가에 빌딩도 소유하였고 여섯 가구의 아파트 건물도 소유했다.

​비즈니스 거래는 가게의 거래 양에 의하여 결정된다. 가족들로부터 한 푼 깎지 못한 바보 같은 거래라고 꽤나 원망을 들었지만 주인이 바뀌면 일시적으로나마 거래 양이 줄어든다는 상식에서 벗어나 가게 인수한 그날부터 물량은 늘었다. 우리 시골마을의 씨족사회처럼 뉴욕의 변두리인 만하셋은 주민들의 이동이 아주 적다. 다주택 건물도 없다. 단독주택만으로 형성된 안정된 고급 주택가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은 소문이 빨랐다. 뉴메니지멘트이고 소통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빠르게 동네를 돌았다. 그 덕에 나는 비싸게 산 가게가 제값으로 산 가게로 계산될 수 있었고 전혀 손해 보지 않은 거래였다고 큰소리칠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미국의 기업 경기는 아주 나빴다. 부동산 거래는 바닥이었고 상가도 아주 조용하였다. 그럼에도 부자동네라는 명성 때문인지 동네의 세탁소들은 고급 서비스에 고가의 차지(charge)를 하였다. 주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가게를 이용한 것 같다. 거의 반값 서비스를 하면서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게 처음부터 물량이 올라간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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