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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8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8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19.10.10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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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시간표 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지 못했음은 그 시간에 마음 졸이고 불안하였던 것도 무거운 짐이었지만, 가게 인수하기 위한 종잣돈이 가벼워졌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 급하고 직진하는 성격 탓에 얻으려고 했던 목표물의 확보에는 성공했는데 문제는 인수대금이다. 그러지 않아도 부족한 판에 1페니 깎지도 못했으니.

​다행히 단 한 번 내가 고용인으로 일한 가게의 주인은 나에 대한 신임이 아주 높았다. 생면부지에서 얼굴을 맞댄 것이 불과 10개월 되지를 않았지만 나를 믿었다.이민사회에서는 신속하게 이웃을 구분한다. 믿고 삶을 서로 나누느냐 그냥 겉도는 인사하는 사람이냐의 구분이다. 태평양에 던져두고 온 과거들은 누구에게나 황금빛이고 현실에서는 보이는 실적을 쌓고 싶다는 실용주의자로 변신하면서 생각하지도 못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왕왕 있다.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는 특히 한인과의 관계는 더 신중해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나를 믿어 준 젊은 내외는 내가 가게를 인수하는 그 시간에 그들도 가게를 확장하여 현금이 많이 딸렸다. 도저히 나를 도울 수 없는 입장임에도 주위의 친구들을 동원하여 2만 불을 빌려주었다. 1년 안에 돈 갚는 날에야 그 돈을 구하기 위하여 고생하였던 이야기를 했다. 형제들에게는 그들의 가게 확장하느라 모두 당겨썼다. 비상수단으로 가까운 교인 열 분에게 신용카드 현금 인출 이천 불씩 해달라고 하여 만든 돈이었다고 실토했다.

​이렇게 달달 돈 마련하느라 고생하는 판인데 프리미엄 받고 파는 가게에서의 상거래 상식인 남은 서플라이는 넘기기로 되어있음에도 그 값을 처 달라는 전 주인의 요구였다. 여기서는 나도 화가 나 거래를 깨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왕 내친 길인 데로 나를 달래고 요구하는 대로 5천 불을 지불하였다. 외환은행 뉴욕지점에 근무하는 사람을 통하여 신용대출받아 처리할 수 있었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뒤뚱뒤뚱 어렵게 걸어서 거래가 끝났다. 전 주인은 삼 주 인수인계해야 하는 의무의 날만 가게에 나오면 되었다. 가게가 완전히 이전되고 타인으로 첫 출근한 전 주인은 가게를 돌아보면서 홀가분함과 섭섭함의 복합된 감상에 젖어 눈물마저 글썽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에는 나는 이해를 하면서도 이 고생 구덩이 벗어나 해방이 되는데 눈물은 웬 눈물! 좀 뜨아했다. 이어 나온 이 한마디 말 "나 이 가게에서 참 고생 많이 했지." 혼잣말의 넋두리는 그분의 그 간의 돈 욕심에 대한 내 모든 생화가 풀려나가는 듯했다.

​가게의 안주인이 된지 이틀 째였다. 식사시간도 잊고 먹지 않았음에도 허기도 못 느끼는 긴장의 시간들이었다. 돈은 둘째치고 우선 가게의 바뀐 메네지멘트 상태에서 비즈니스가 줄어들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는데 이제는 남의 것이 된 가게에서 전 주인은 가게 이 구석 저 구석을 찬찬히 살피더니 컨베이어에 걸려있는 전 주인이 해 놓은 일을 계산해 달라고 요구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다. 변호사에게 이야기해보라는 말로 더 이상 대화를 잇지 않았다.

다음 날 그러니까 가게 인계 후 사흘째 되는 날 출근하였다. 변호사의 충고가 있었던가 아닌가는 모르지만, 그 요구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욕심의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말할 가치도 없는 상식 밖의 추한 꼴을 보고 나니 내일 일은 어떻게 되든 우선 그분을 내보내고 싶었다.

​"이제 제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으시잖아요? 빨리 병원에 가보셔야 하니 내일부터는 나오시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라 했더니 역시 공짜 일하고 싶었으랴, 그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실제로 건강이 아주 나빠진 60에 가까운 분이다. 긴 시간을 세탁소에서 고생도 했고 금방 암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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