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2-11 00:07 (수)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1
[김갑숙의 미국생활기] 애플 1
  • 김 갑숙 기자
  • 승인 2019.08.03 08: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선 비행기로 라구아디아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발 빠른 도시는 밤의 어둠도 밀어내려는지 불빛으로 휘황찬란했다. 처음 미국 왔을 때 잠시 케네디 공항을 거치긴 했지만, 그날은 악머구리 같은 폭우로 시야도 아주 좁았다. 물에 젖어 용맹을 잃어버린 공항의 빌딩들이 오히려 오랫동안 빌딩 숲이라든가 마천루의 하늘 찌르는 건축문화를 기대하였던 나를 실망시켰는데 8월 말의 짧지는 않은 여름 해의 뒤꽁무니에 어우러진 도시의 불빛은 거대한 힘을 과시하였다.

착륙하려 고도를 낮춘 비행기의 작은 창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주택가 정원에서 풀장을 볼 수 있었다. 미국인이 말하는 인디언 서머, 도깨비 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라 중상위권으로 안정을 누리는 풀장의 주인들이 은근히 선망되었고 질투도 났다. 감히... 하는 내 형편의 위치를 조용히 음미하기도 하고, 멀리서 맨해튼의 빌딩들이 촘촘하고 저마다 불빛으로 단장하기 시작한다. 기왕에 불빛도 환하였고 계속하여 밝음으로 진입하는 불빛들이 보인다. 맨해튼을 고이 감싸면서 흐르고 있는 흐드슨강과 이스트강이 보인다. 어느 강이 어느 강인 가는 모르지만, 대략 그런 강들일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다시 정착의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성인임에도 우선은 강과 빌딩과 깊숙이 들어온 바다가 엄청난 동력의 도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음에 흥분과 희망이 용솟음친다. 내가 그런데 책임 없는 아이들이랴, 민둥민둥하고 평평한 시카고의 좀 지루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다가 마치 탈 것 많고 만질 것 많고 아슬아슬한 위험과 안정감을 오가면서 만끽할 수 있는 서스펜스를 주는 놀이기구를 만난 듯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방덩이를 치켜들고 비행기의 창에다 코를 납작 댄다. "야! 야~ 야!" 하는 함성을 지르면서, 앞뒤 옆으로 다른 승객들의 눈치를 살폈다. 귀여운 녀석들 뉴욕 여행이 처음인가 보다 하는 표정이라 안심되었다. 그래도 나지막하게 미안함으로 주눅 든 음성으로 쏘리는 했다.

덜커덕 촌스럽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비행기는 착륙하였다. 케네디 공항을 먼저 본 나에게는 라구아디아 공항은 주 공항이 아니라 규모 면에서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빠도 생각하고 보고 싶었던 고모 사촌들도 기다려지는지 깡충깡충 뛰어 출입문으로 달아나지만, 나는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는 순간부터는 시간 여행의 작동으로 현실로 돌아왔다. 낯설고 첨예하고 무자비한 경쟁의 도시에 내가 왔다는 현실이 나를 압박하였다. "나는 왜 이렇게 무지막지 대책 없이 용감하기만 하였던가"하는 반성과 두려움으로 얼굴은 백지장이 되었을 것이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다른 사람들도 잘 살아가는데 뭐, 우리 잘 왔어. 남편이 그냥 해보는 말들을 쏟아내었다. 삶은 자체가 자생력이 강한 법이야. 한 고비 더 돌아가야 하는 동산으로 가는 것뿐인데. 나도 남편에게 해보는 말을 했다. 우리들의 대화에는 둘 다 믿음이나 확실함이 결여되어 헛헛하기만 하였다. 마음에서는 모든 흔들림의 짙은 안개가 포화상태에서 비를 내리고 있었다.

Tag
#뉴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 160 일신빌딩 403호
  • 대표전화 : 02-2272-2999
  • 팩스(협회) : 02-722-49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승천
  • 등록번호 : 서울, 아05019
  • 발행처 : 시니어타임스(주)
  • 제호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 등록일 : 2018-03-14
  • 발행일 : 2018-03-01
  • 발행인 : 박영희
  • 편집인 : 김봉중(회장)
  • 편집국장 : 변용도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ondjkim@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