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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책 읽지 마~’
‘할머니 책 읽지 마~’
  • 육미승 기자
  • 승인 2019.06.25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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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돌봄의 재미

책상에 앉아 책을 읽던지 뭔가 글자들이 적혀 있는 것들을 읽을라치면 수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하는 소리가 "할머니 책 읽지 마~"다. 또 쓰지도 말란다. 핸드폰도 보지 말란다. 자기가 가져 온 알림장과 안내서들을 읽는 것도 아주 맘에 안 들어 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 갑자기 눈을 다쳐 망막 박리 수술을 한지도 1년 7개월이 넘고 있다. 실명 한다는 말에 놀랐던 기억과 검사 끝나자마자 서둘러 입원을 시키는 바람에 아무 준비도 없이 수술대에 누워 전신마취를 하며 두려움 반 홀가분함 반 이었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살아났다.

살다가 이렇게 갑자기 가는 거겠지. 약간 무섭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모르고 살다가 가니 무서움 없어 얼떨결에 생을 마감하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간호사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고 왼쪽 눈을 수술하는 거라는 걸 수차례 확인했었다. 이름도 수차례 불렀다. 이렇게 수없이 확인을 하는데 왜 수술사고가 나는지 의아스럽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이제 마취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마취에서 잘 깨어날지에 대한 의문이 잠깐 생기는 듯하다가 그 뒤는 기억이 없다. 안개 속 갈대숲을 헤매다가 깨어났다는 말을 들으면서 재빠르게 입원실로 옮겨졌다.

망막을 살렸으며 수술은 아주 잘 되었다고. 여러 과정그 거쳐 눈을 바로 보기 시작하면서 시력이 엄청 저하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모든 것들이 안 보이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람 알아보는 게 많이 힘들어졌고 읽기와 쓰기가 내 맘 먹은 대로 안 된다는 사실에 실망이 커졌다. 사람은 적응하기 마련이란 속에서 혼자만의 처리하는 방법이 약간씩 생겼다. 노력도 했다. 우리 집 꼬마에게는 숨겨지지가 않았다. 답답하면 불러대니.

오늘도 할머니가 새 책을 가져와서 읽으니 놀면서도 자꾸 내 상태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재미있느냐며 묻는 척 하다가 곁에 와서 오늘은 그 보라고 보챈다. 할머니가 아프면 싫단다.

책 읽는 할머니 사진이나 찍으라니까 신나서 찍어 주며 보여 준다. 이걸 글로 써야겠다고 말하니 그럴 줄 알았으면 안 찍어줄 걸 그랬다면서 눈을 자꾸만 쓰면 안 되는데 왜 할머니는 의사 선생님 말을 안 듣느냐며 뽀주어퉁해진다. 할머니가 아프면 자기 혼자 있어야 하는데 할머니는 그래도 괜찮으냐고 물어가며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로 내 가슴에 꼭 안겨 쫑알댄다. 할머니가 알아서 그만 둬야할 때는 그만 두고 눈을 충분히 쉬게 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달래고 등을 쓸어 준다. 혼자 계시는 어머니 걱정이 불쑥 가슴을 훑는다. 보살핌을 받다가 이 아이로 인해 혼자 계시게 된 어머니를 모시려 해도 속만 태우고 이곳으로 안 오신다. 마음에 걸리는 손녀와 어머니가 함께 내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며 답답해하는데 ‘할머니 이제 그만 읽어, 응?’ 하며 애원조로 말하는 꼬마 말에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본다. 약간 이르긴 해도 저녁을 차려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로 돌아 온 나는 이것저것 상을 차리며 오늘 하루를 그래도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에 기뻤다. 이제 조금이라도 예전처럼 책도 읽고 글도 자꾸 써야지~ 다짐을 했다. 아이는 책을 안 읽는 할머니가 좋아 금세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맛 있는 생선을 굽네?" 하며 즐거움이 담뿍 담긴 얼굴이다. 내가 어느 새 꼬마가 돌봐주는 할머니가 되었구나 싶은 마음에 픽 웃음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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