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들 (3)

아닌 땐 굴뚝에서 연기 날까 하는 옛말은 현대에 와서도 유용하다.

술렁임은 언제나 부작용을 동반한다.

새 출발은 성공으로 끝맺겠다는 강박감의 에너지는 부작용을 만들기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90년대 들어오면서 여기저기 한인사회가 초점이 된 사건들이 심심찮게 터졌다,

그 사건들 중에는 한인끼리이기도 하였고 한인과 미국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한인과 미국 현지인들 사이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은 한인들의 커뮤니티가 힘을 쓸 만큼의 크기로 형성되면서 더 이상 한인들은 마이너리티로 주류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집단이 아닌 집단으로 성장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필라델피아의 운동화 가게 사건이 터지고 얼마 되지 않아 뉴욕 브루클린의 야채가게에서 사건이 발생하였다.

1990년 봄에 레드애플이라는 식료품 가게에서 한인 주인과 흑인 고객 사이에 싸움이 발생하였다. 고객이 주인의 불친절을 걸고 나섰다. 이런 크고 작은 사건에서 언제나 흑인들은 약점이 강점이 된다는 손바닥 뒤집기 작전을 편다. 한인들이 인종차별을 하였다는 구실이다.

한두 사람으로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이웃들이 합의하여 그 가게 상품 불매 운동을 벌였다.

가게 주인도 꺾이지 않고 계속 가게를 운영하였다. 뉴욕의 교포사회에서는 조용하게 작은 성금을 보내어 그 가게의 지속적인 운영을 돕기도 했다. 이 사건은 9개월 이상 계속되었다. 9개월 동안 흑인들은 세 번 이상 단체로 가게 앞을 점령하기도 하였고 불매운동을 벌였다. 가게 주인은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면서도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한국신문의 미주판에 여러 번 실렸다. 각 교회에서는 공식적이지는 않았지만 돕기 운동이 활발했다. 이 사건에서도 불매운동은 주류들의 큰 호응을 받지 못하였고 흑인 사회에서도 지각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별 호응을 받지 못하여 지엽적인 사건사고로 끝났다.

사건 자체는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한인사회에서는 내적인 충격으로 여운이 컸다.

한인들이 벼락치기로 미국 사회에서 경제적인 기반을 잡겠다는 조급함에 대한 반성의 소리가 높아졌다. 교포들은 어차피 한 두 해 혹은 그보다 긴 여러 해만 살다가 떠 나는 사회가 아닌 이상 더 이상 단기 목적만으로 살 수는 없겠다는 각성들을 했다. 반드시 필요한 각성이었고 한인사회의 한 발전 단계였다.

교포사회의 문제라기 보다 교포 가정의 문제는 틴에이지의 나이에 들어선 자녀들이 초기 이민 가정에서와는 달리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한인 커뮤니티가 생긴 공립학교에서는 초기에는 학교 관계자들은 한인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여 굉장히 반겼다. 교사들은 한국 학생들의 학구열에 감동하였고 학부모들의 열성에 칭찬과 협조를 하였다. 그리고 그들도 한인 학생들로 하여 교육성취도가 높아 보람을 가질 수 있었다.

한인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한인 학생들 사이에서 또는 한인 학생들과 다른 나라 학생들 사이에서 패싸움이 종종 벌어졌다. 학생들이 교칙을 위반하는 사례도 빈번하여졌다. 학업성적이 떨어지는 학생 수도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학교와의 마찰이 커져만 갔다.

이 무렵부터는 학교 관계자들이 한인 학생들을 반긴다기보다는 오히려 꺼려 하는 눈치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부모들도 쉽게 자녀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다, 교육에 적극적인 부모들은 정보를 교환하며 집을 옮겨 다녔다

맹모삼천지교는 우리네가 마음에 담고 있는 하늘이 내린 산 교훈이며 자녀교육의 지표가 아니든가.

이런 이유로 뉴욕 근교의 조용하고 비교적 한인들이 감당할 만한 가격의 주택가에서는 집값도 오르고 공립학교의 학생의 교육성취도도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새든 바가지가 나간다고 새지 않으랴는 말같이,

한인 학생들에 대한 일반적인 칭찬이 그 힘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물론.

성실하며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많은 교포 학생들이 여전히 건재하였고 단 비율이 교포사회란 특수 환경에서 만들어 내는 그런 좋은 성적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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