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서울의 집에서 감사의 글을 썼다. 2023년의 절반이 지난 6월, 지금 나는 천둥소리가 들리고 건너편 집의 불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타국에서 감사의 글을 쓴다. 올해 상반기에도 예전처럼 일도 많았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슬퍼했다. 그런데 정말 슬픈 일이 일어났다. 다소 예민해진 건강의 문제도 경제적 어려움도 아니다.그분이 갑자기 떠나셨다. 항상 힘찬 목소리로 반가운 모습을 보이시고 오히려 한참 아래인 올케의 건강을 염려하고 힘을 실어 주시곤 하던 분이 아니신가. 봄이 오면 여름 오듯 가을 지나 겨울 맞듯 해 뜨면 지는 찰나
웃음도사는 15년 전에 내가 처음들은 한국어이다. 40대 후반의 경쾌한 여인을 처음 만났는데 소개하는 분이 그렇게 웃음도사라고 그분을 소개했다. 한참 한자리에서 대화를 하다 보니 웃음치료사였다. 웃는 것도 미소가 아니라 아랫배로부터 나와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큰 소리로 웃어야 한단다. 모든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치료라는 거였다. 웃음도사는 이웃이 되었고 만나는 기회가 자주 있으면서 주위에 인가가 드문 우리 동네에서 정말 웃기 위하여 큰소리로 웃기 위하여 온몸을 흔들며 웃어재끼곤 했다. 그 웃음도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리더의
늦복/오정환젊은 시절 우연히철학한다는 사람 만난 적 있다늦복 있다는 말 들었다그게 언제 쯤이죠?예순은 되야 합니다 그때는 인생 다 산 건데복이 들어와도 뭐하냐 싶어잊고 살았다나이 들어보니무엇보다 늦복이다
나팔꽃/정현숙홀로는 일어설 수가 없어어디든 친친 감겨줏대없이 살아가지만그렇게 살다보니비루하고 치사해서배배 꼬일 때도 있지만괜찮아나를 기다리는나를 방긋방긋 웃게 하는아침해가 있어서
여름비 오는 날/박성희 여름비가 온다미지의 나라에서 걸어오는 것처럼조용조용 머리 위를 밟으며 온다간질간질 언굴을 간질이며 온다몰라서 걸어온 인생길천둥 번개 동행하며아프게 내리는 소낙비가 여름비라는데오늘은 조용조용 여름비가 온다
사과謝過는 사람들이 사는 동안, 자기가 잘못을 범하고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하여 상대방에게 그것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과를 한다는 것은 똑같은 사안의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상대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인격을 인정하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만일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자기와 대등한 처지에서 생각하지 아니한다는 뜻이 되고 범했던 잘못이며 실수를 다시 계속하겠다는 것을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다.상대적으로 사과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똑같다. 사과를 받기를 원
며칠 전까지 부지런히 정원 손질을 했다. 정원 손질, 이렇게 표현하니 무슨 창의적인 일을 하여 보람도 느끼고 재미도 보고 기분도 상승한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이제는 진녹색으로 무거워 보이는 잎새들을 거느린 나무와 흐드러지게 피워낸 꽃 사이에서 나도 질세라 자리다툼하는 잡풀들을 뽑아내는 작업이다. 요즘의 잡풀은 나도 질세라가 아니다. 너네가 사랑하든 말든 나는 이 계절에서만은 나의 왕국을 만들겠다는 극성스러움이 교만과 막무가내의 신, 독재자의 모습이다. 정원의 주인이 애써 가꾸는 질서의 영토에서 조금만 분위기 파악하여 틈새를 이용
접시꽃/정현숙시골집 담장 아래에나란히 줄지어 피어있던키 크고 화려해도거만하지는 않아중심이 아닌언저리를 고수하는 겸손한 꽃조금은 흔해서귀한 대접은 못받지만막접시처럼함부로 다루기엔 아까운가벼운 디저트와 어울릴알록달록 예쁜 꽃접시소박한 일상에서소소한 행복을 담으려는사람들을 위해올해도 어김없이꽃접시 접시꽃 탐스레 피어환하게 웃고 있다
개구리처럼/오정환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어느 날나는 먼 데 있는 사람을 기다리며시골길을 걸었습니다해는 이울어 사방이 캄캄하고길 옆 논에서는 개구리들이목청껏 울었습니다.무엇을 원하기에해질녘부터 첫새벽까지저토록 우는 것인지나는 논 앞에 서서한참을 생각했습니다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간절하고 위대하고 끈질기게매달려 본적 있는지아주 오래 생각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 혼잡한 버스 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미처 오르지 못하고 닫혀 버린 버스에 실망한 모습이 역력하다. 어찌 된 셈인지 버스 안은 평소엔 찾아도 안 보이던 초등학생과 집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대학생들로 가득 찼다. 내려야 할 곳에서 미처 내리지 못한 이들이 "내려요!"라고 소리치니 금시계, 금목걸이, 금팔찌로 치장한 화려한 차림의 노인이 투박하고 우렁찬 소리를 질러댄다.몇 년째 마을버스를 타고 오르내렸지만 오늘 같은 날은 없었다. 편히 앉지도 못하고 내가 든 짐의 무게만으로도 피곤한 몸이었지만 왠지 기분이 좋
파랑새/김월란 너를 생각하자마자눈앞에 나타난다꿈인지 생시인지볼을 꼬집는다어둠이 물든 밤별빛따라 왔을까한마디 말도 없이잠시 머물다 간마음의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너는신께서 보내주신 천사이다
조카가 학회 참석차 제주도에 왔다. 학회 장소가 제주대학이다. 숙소가 대학 근처의 호텔인데 예약한 한 사람이 집안에 일이 생겨 불참하게 되었다고 그 방에서 하루 묵으면서 얼굴 보자고 한다. 바쁜 사람들 얼굴 보자면 이런 방법도 참 좋다.제주대학은 우리 집과 반대쪽이라 그 동네는 통 모른다. 아무래도 은퇴 후에 정착한 곳이라 한창 활동할 시기의 내 무대가 아니었으니 제주도 전역을 샅샅이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한라산을 두고 이쪽 저쪽이라 궁금하였던 터다. 초대해 주는 걸 반가워하며 난타호텔을 찾아갔다. 처음부터 호텔이란 면에서
원덕은 용문에서 경의 중앙선을 타고 서울 방향으로 출발하면 첫 번째 만나는 역 이름이다. 아무런 인연도 없고 그렇다고 가 본 적도 없지만 왜 그런지 다정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역 이름이다. 언젠가 한 번 내려서 둘러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어느 덧 햇수로 7년이 되어버렸다. 오며 가며 역을 보면 아주 오순도순 정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역을 드디어 며칠 전에 가봤다. 출구가 하나라 나가자마자 주차장인 듯 했고 사람도 없는 아주 고요한 곳이었다. 역내에 있는 안내 지도를 보면서 우선 오른쪽으로 걸어 나갔다. 조금 가다가 만
찔레꽃/정현숙파고드는 아픔을덤불 속에 숨긴 채지나가는 길손 위해미소를 잃지 않는찔레꽃이 어여쁘다아픔 없는 삶이어디 있겠느냐며세상살이 초월한 듯덤덤하게 속울음 울던그녀가 생각난다가던 발길 멈추고초록그늘 아래에서나도 내 안에품고 있는 가시를쓰다듬듯 헤아리다굳은살처럼 무디어진그 가시가 아닌찔레꽃 향기에 찔려그만 찔끔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풋/오정환책을 냈다니까세 권만 보내란다오호! 세 권씩이나.....얼른 포장하며책값과 계좌번호를 적어 보냈다택배비는 뺐다장난하시는 거죠?누가 책을 사서 읽어요마늘을 한 접 보낼까고민 중이다
나는 29세에 아내와 한 가정을 이뤘다. 아내는 홍제동이 고향이고 나는 전남 고흥산이다. 39년 전 지금은 고인이되신 장모님이 운영하던 순댓국집을 방문했다. 지금은 옷가게로 변하여 그때의 모습은 아니지만 윗층에 여관 간판이 아직도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감개무량했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외관만 조금 바뀌어 있어 지난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인왕초등학교를 다닌 자매의 다정함이다. 아내는 7남매 중 막내이다. 유진상가 건너편 제주식탁입구 모습이다. 39년 전 건물 그대로이다. 제주가 고향이신 주인장은
50여 년 전 내가 한창 때였다. 서울역에서 왕십리를 거쳐 의정부에서 장흥으로 들어가 울대리를 지나 송추, 일영, 고양을 돌아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가는 순환 열차가 있었다. 서울 외곽을 한 바퀴 도는 교외선이다. 참으로 많이 이용했었다. 장흥, 송추, 일영은 가장 즐겨 찾는 유원지였다. 추억도 많이 심어놓은 곳이다. 오토바이가 처음 대중화 될 무렵, 그룹 지어 임대한 오토바이를 타고 줄지어 나서면 바라보는 아가씨들의 눈길에 묶여 넘어지기 마련이었다.자주 찾았다. 더구나 울대리 공원묘원에 할머니를 모신 후에는 일년에 두세 번은 가족과
마음밭에/오정환책 일천 권도 읽지 못한 채마음 가장자리에 선을 긋고생각이 다른 사람은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가시 울타리 두른 적 있다제법 견고하던 울타리세월 속 비바람에 헐고어느 해 태풍으로 와르르 무너진 후나를 가둔 편협이 울컥울컥 나가버리긴 했으나아직 희미하게 울타리 자국 남아 있다이제는 마음 텃밭에누구나 기웃대도 좋을빨강 노랑 하양 꽃잔디 깔고 싶다
언니, 아들 며느리가 이렇게 말하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언니라는 호칭은 내가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 후배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고, 나도 선배들을 부를 때 그렇게 호칭했다. 아마 이 호칭은 학생 신분일 때 선후배 사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호칭이 아니었나 싶다. 가정에서 자매간에서도 사용하긴 하지만 사회에서는 학교란 커뮤니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호칭이라 기억하는데 제주도에서는 나이 든 후임에게도 아주 쉽게 자주 듣는다. 처음엔 좀 뜨악스럽게도 느껴졌지만 이제는 친근감도 있고 더 젊은이 대우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여기서는
봄꽃이 지고 있다/정현숙바쁘게 허둥대며살아온 지난 날들이문득문득 그립다흐르는 것인지쌓이는 것인지알 수 없는 세월따라경험치는 늘어가는데텅 빈 껍데기처럼헛헛하기만 하다돌아보면막막할 때도 있었고고단할 때도 있었으나그래도 좋았다지나가고 나면사라지고 나면왜 이리도아리도록 아쉬운가한바탕 법석대던 봄꽃이하나 둘 지고 있다아름다운 시절이소리없이 시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