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정현숙오래된 기억 속 갈피에서곤히 잠자고 있는 꽃꽃잎으로 손톱에 물들이며오손도손 나누던 정겨운 이야기첫눈이 오기 전에 지워질까 봐가슴 졸이던 순수의 시절꽃물은 지워졌지만선연히 남아있는 다홍빛 추억
한 세상에 와서 한 자리 차지하고 살았네.이리저리 뒹굴면서 힘든 세상 굴려 가며 슬폰 일 기쁜 일도 많았지.희극과 비극이 있었기에 삶의 지혜가 열렸고부귀영화 축복받아 한 평생 잘 놀았네. 70살 되니 한 해가 다르게 힘이 들고80살 되니 한 달이 다르게 힘이 들고90살 되니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힘이 들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공기를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실컷 마셨으니하나님 고맙고 감사하옵니다.내 힘 들이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어디든 떠 있는 바람,공기를 생각하니고맙기 그지 없구나. 그래도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나,
가을밤/정현숙독백처럼 읊조리는 가냘픈 풀벌레 소리창문에 어룽거리는 서늘한 달그림자촉촉이 젖어드는 눈망울센티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밤지나간 바람소리가 잃어버린 그림자가못내 그리워 잠 못 이루는 밤가을이 뭐길래 가을밤이 뭐길래괜스레 허전하고 괜스레 쓸쓸한 밤
밤송이/정현숙가시로 잔뜩 감싸고 있더니토실한 알밤을 품고 있었네열매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네품안에 자식이라고지극정성 애지중지 키워서어느 시기가 오면 떠나보내듯마침내 떠나보내려 하네잘 여문 밤톨이 대견스러운지그래도 활짝 웃고 있네털릴 건 털리고떠날 건 떠나야 하리빈껍데기는 또 다른새로운 것으로 채우면 되리
억새/정현숙서슬 퍼렇게날 섰던 시절 지나부드러운 백발 휘날리며너울너울 춤을 추네겸허한 가을을 연주하는은빛의 향연이네
코스모스/정현숙가벼운 바람결에도지조없이 흔들린다고욕하지 마오꿋꿋이 못 버티고소신없이 흔들린다고비웃지 마오나약한 생명이살아가기 위해서는어쩔 수가 없다오시류에 편승하여현실과 타협하려면어쩔 수가 없다오
지나온 길/정현숙오남매 가지에 바람 잘 날 없어근심 걱정 끊이지 않던 친정엄마세월이 한참 흐른 뒤, 어느 날바람불던 그때가 고요한 지금보다차라리 좋았다고 하시더니지나온 길은 대부분미화가 되어 입력이 되는 건지나 역시 친정엄마처럼험난했던 가시밭길도 꽃길로각색이 되어 있는 걸 보면붙잡고 있던 것들을 다 놓치고변방으로 밀려난 것 같은초라한 행색의 내가 싫은 날옛 기억을 부풀리는 바람이 그립다정겨운 꽃들이 피어있을 꽃길도
아침이다.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간밤에 무너지듯 침대에 누웠는데 눈을 뜨니 날이 밝아 있었다. 아직 길 위의 가로등이 모두 소등된 것은 아니지만 밝아 오는 빛을 이기기엔 이미 그의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어메이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메이징이라는 뜻은 놀랄 정도의 어처구니 없는 그리고 굉장한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사전에 나와 있다. 정신을 집중하고 몰입하는 좋은 수단이 사전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는 말을 TV에서 패널을 통해 들은 기억이 새롭다.요즘 집중이 잘 안 된다. 나이 들수록 생각이 단순해
나이테/정현숙함초롬히 이슬 머금은코스모스가 소식을 전한다가을이 오고 있다고잠잠하던 풀벌레가요란스레 울어 젖힌다여름이 가고 있다고순순히 자리를내어주고 받아들이는자연의 질서가 경이롭다빙빙 사계절이 돌고 있다제자리에서 도는 것 같은데돌면서 굴러가고 있다굴러가면서 쉼없이나이테를 늘이고 있다옹이 수도 늘이고 있다
언제부턴가 아마도 한국전쟁 복구기에서 부터 조금씩 시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여론조사가 간혹 있었다. 나도 초기에는 그 조사에 대하여 그렇게 진지한 대답을 하지 않은 듯 하다. 그냥 성의없게 응했다. 원조를 위한 기본정보로 국제기구 조사에서 처음 한국에 이런 시설이 있기나 했었나 하는 답이 나올 정도로 피해수치가 엄청 높아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후 조사의 중요성에 대하여도 여러 번 교양을 받았고 글로도 접해 모든 조사에 대하여 적어도 성의있고 정확한 대답의 중요성을 알았고 그런 자세로
도라지꽃/정현숙오랜만에 만난도라지꽃이 반갑다유년 시절고향집 텃밭 한 귀퉁이에청초하게 피어있던 꽃봉긋봉긋 부풀어 오른꽃망울이 더 반가워뽁뽁 뽁뽁 터트려본다별똥별 스러지듯가버린 세월이보랏빛 그리움으로바람결에 일렁인다
얼마나 너를 생각하며 가슴 설레었던가 불면의 하얀 밤숨죽이며 지새우고오로지 너를 위한 밤이었지 널 만나면 별처럼반짝이는 눈동자이것이 사랑일까 너의 낮선모습 새로움까지도신선하게 다가왔어 너와 마주하면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냥 좋아 일상의 익숙함 속에서 너를 향한 순백한 그 애틋함다시 소생하는핑크빛 애드벌룬 우리의 일상도 익숙하고 새로운신비주의 세상으로익어가는건 아닐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규보(奎普) 방기천월간 『문학
영국 북서부 컴브리아 카운티(Cumbria County)는 그림처럼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도시다. 로맨스 영화 '이프 온리(If Only)'의 촬영 무대가 되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이곳 산톤 브리지라는 작은 시골 주점에서는 매년 11월이 되면 『세계최고의 거짓말 대회 (world’s biggest liar championships)』가 개최된다. 이 대회는 19세기 술집을 운영했던 윌릿슨 노인이 창시하여 지금까지 20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양조회사 제닝스가 후원하는 이 대회는 19세기 초부터 매
덥다,덥다.모자와 선글라스 그리고 양산까지 받쳐들고 이열치열의 잔치를 즐기려 밖을 나선다.특별한 날이 오면 내 자신에게 선물을 하려고 마음을 먹은지 조금 시간이 흘렀다.오늘은 손톱정리.간단한 것 같아도 1시간30분을 보내니 사알짝 간 밤 못 잤던 잠도 쏟아지는 듯 ~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 도장 파는 곳이 눈에 들어 온다.나는 들어가 약간 주저하며 혹시 낙관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시인이냐고 묻는 사장님에게 답 대신 손부채에 부족하지만 좋은 글을 써서 선물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설명했다.우리 나이엔 프로는 조금 비켜가고 즐기는
항상 신나고 항상 들떠있는 것이행복이라고 오해 하기에 우리는 그동안얼마나 많은 작은 행복들을 인지하지못하고 사는지 모른다일상의 사소함 속으로 더 깊이 더 온전히들어가는 것이 행복인것 같다우리 사회가 주로 던지는 질문들은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에 관한 것들과돈을 잘 버는지는 묻지만 만족하며 살고있는지는 묻지 않는 것 같다대기업에 다니는지는 묻지만존중받고 사는지는 묻지 않는 것 처럼아파트 평수는 묻지만 외롭지 않은지는물어 본적이 있는지...행복은 특별한 사람만이 느끼는감정이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일별일 아닌 것 같은 일 일상적인 일에
오전 10시 잡지와 책을 주섬주섬 싸들고 카페로 나왔다. 시원한 카페 안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잡지들을 읽었다. 점심때는 좋아하는 퀸즈캐롯 케잌을 먹으며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유물 이야기'를 두번째 읽었다.편의점에서 라면을 끓여 저녁을 해결하고, 블루마운틴 커피까지 마셨다.카페 안에 너무 오래 있어 춥다고 느껴졌을 때는 평화의광장 하하호호 물놀이장을 돌며 찜질방 온도로 몸을 덥혔다. 기온이 좀 내려간 6시에 카페에서 나와서 몽촌토성 산책로를 한바퀴 돌았다.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 하하호호 물놀이장에는 유아와 어린이 500명(
너와 나 사이꽃 같은 인연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야고삐 풀리면 망아지 되어튈 수도 있지아슬아슬 벼랑 끝바람의 손끝모를 깨뜨려 원을 그려야 해만남이 훑고 간 자리눈물로 꿰매어 지은 멍에살얼음 밟 듯사랑이 눈뜨는 순백의 새벽
삶의 대나무대바구니에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다고 생각해 보자.열 번, 백 번, 천 번을 부어도 대바구니에 물을 담을 수는 없다.물은 밑으로 계속 흘러내릴 테니까.하지만, 대나무에는 점점 물이 스며들어 촉촉하고 감촉이 좋아진다.푸르고 새롭게 피어 오른다.우리 생명을 지탱해주는 물은 유한(有限)하여 쓸수록 마르지만,인간의 열정은 샘물처럼 퍼 쓰면 또 고인다.한계의 벽을 넘으면 삶의 대나무는 푸르고 푸르다. "한계는 당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 로버트 F. 케네디 -
산책길에/정현숙푹푹 찌는 폭염 속에서도과일은 새콤달콤 익어가고초목은 푸르고 싱그럽다순환하는 계절을 따라올 것은 오고 떠날 것은 떠난다소나기 한바탕 쏟아진 뒤천변길을 걸으며맑은 물소리로 귀를 씻고신선한 공기로잡다한 생각들을 걸러내니산책길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개망초도 생글생글 눈웃음 친다
늘 서울의 집에서 감사의 글을 썼다. 2023년의 절반이 지난 6월, 지금 나는 천둥소리가 들리고 건너편 집의 불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타국에서 감사의 글을 쓴다. 올해 상반기에도 예전처럼 일도 많았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슬퍼했다. 그런데 정말 슬픈 일이 일어났다. 다소 예민해진 건강의 문제도 경제적 어려움도 아니다.그분이 갑자기 떠나셨다. 항상 힘찬 목소리로 반가운 모습을 보이시고 오히려 한참 아래인 올케의 건강을 염려하고 힘을 실어 주시곤 하던 분이 아니신가. 봄이 오면 여름 오듯 가을 지나 겨울 맞듯 해 뜨면 지는 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