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김월란 동네 한 바퀴 돌다보면이름 모를 꽃과 들풀까지도반갑게 인사를 한다진달래 지고철쭉이 한세상이건만산에 사는 진달래의어여쁨과 비길 수 있으랴동네 한 바퀴 무심코 지나치던철쭉이건만오늘 너의 가느다란허리춤에 숨겨진향기 이제야 보았네자세히 보면 만날 수 있다네
'친정엄마' 뮤지컬을 꼭 보고 싶었는데, 협회에서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서 얼른 댓글을 달아 친구랑 같이 보게 되었다. 기회가 올 때 얼른 주저없이 재빠른 행동도 중요한 것 같다.항상 내편인 엄마는 20년 전에 가셨는데 아직 세상을 덜 깨달았는지 엄마 품속에서 놀고 엄마만 있으면 두려움이 없던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가시고 나서야 잘 해드린 것도 없이 받기만 한 것이 너무나 죄송스럽다.딸도 없이 아들만 둘 있는 나는 딸 있는 주위 친구가 딸과 친구같이 지내는 걸 보면 정말 부럽다. 그래서 어쩜 독립심이 더 생길 수도 있다고
"7시 30분까지야" 잊지말라고 톡을 보내온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준비를 한다. 친정 아버님을 뵈러가기로 한 날이다.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 4월에 놀라 달력을 보니 어느새 마지막 주일이다. 한 주가 더 있다고 생각을 하고 약속을 겹쳐 잡았다. 실수를 한 것이다. 앞으로 절대로 이날 만큼은 실수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한다.주중의 강원도 길은 막힘이 없어 우리는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북이 고향이신 아버님의 뜻에 따라 3.8선이 있는 인제에 모신 후 늘 강과 산을 바라보시며 생시처럼 늘 평안하게 계신다고 믿는다. 어느새 10년이 넘
이고 지고 무거운 나날들, 힘에 부쳐 한숨 돌릴 때마다 억지로라도 하늘을 보자. 푸르른 마음 속 행복이 가득하고 희디흰 솜사탕같은 달콤한 꿈들, 뭉게뭉게 피어오르 듯 하늘처럼 구름처럼 꿈꾸며 살고 싶다.바쁜 걸음 잠시 멈춰 숨고르며 주변 둘러보면 얼굴 스치는 한줄기 바람 깃발 화답하듯 희망이 솟아나고 행복이 스며드네.바람결에 시원한 생명 찾고 만물의 마음 흔들며 속삭이는 바람처럼 살고 싶다. 이고 져서 흐르는 땀 씻어주고 깊은 한숨일랑 바람결에 날려주며 지친 삶에 생명의 바람이 되고 희망의 바람이 되고 싶다.
IT 디자이너인 아들이 자기가 디자인한 의상을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한복을 모티브로 AI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세상은 AI가 대세인 듯싶다.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든 AI를 내 삶에 어떻게 접목시켜야 하나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민들레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오정환 민들레 씨앗이 아스팔트 갈라진 틈에 내려앉아 싹을 틔우는 일,그것을 기적이라고 해야 하나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민들레 씨앗이 내려앉도록 아스팔트가 일부러 틈을 내지는 않았을 테고빈틈을 용케 찾아내어 정확히 낙하하지도 않았을 것인데 기적이라고 하기엔 틈마다 쌔고쌨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그곳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고 하기엔 맨숭맨숭하다 질긴 생명력으로, 바람에 날리다 날리다 날리다 떨어지고휩쓸리다 휩쓸리다 휩쓸리다 그곳에 이르러 뿌리 내리고만 가지 쓴 맛을 겪은 후에 피어 오른 노
조팝나무꽃/정현숙작거나 좀스러울 때흔히 비유되는 좁쌀그 좁쌀을튀겨 놓은 것 같다 해서붙여진 이름, 조팝나무꽃이맘때쯤이면쉽게 만날 수 있어하찮게 생각하고무심히 스쳐 지나치려는데오늘따라 눈길을 붙잡는다가만히 들여다 보니자그마한 것들끼리옹기종기 다닥다닥모여있는 모습이 참 귀엽다때로는 이렇게별거 아니다가별거로 다가올 때가 있다하루하루를 피워내며살아가는 우리들 삶 또한별거 아닌게 아니라 별거이거늘
며칠 전부터 바람이 분다. 많이 분다. 습기는 없다. 습기 없는 바람은 바로 봄바람이다. 따스하고 햇빛도 강렬하고, 봄바람은 태양열의 전도체로서의 역할도 잘했나 보다. 전체적으로 따스함이 입체적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충분히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온통 집을 뒤집었다 이불도 봄 이불로 바꾸었다. 겨울 이불은 세탁하여 이불장 구석 깊이 얌전하게 보관했다. 그랬는데 바람이 슬금슬금 습기를 먹는다. 스펀지처럼. 대면대면한 얼굴로 전혀 바뀌는 환경을 내색하지 않는 포커페이스다. 아직은 우리 땅이 완전히 태양의 온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는
눈이 짓무르도록 봄을 즐기며 두 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본다는 시인의 마음을 전해 받은 4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말하듯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날이고 오늘이 가장 멋지고 맛있는 축제의 날이다.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봄날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리라.▶감사 하나4월의 어느 날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예술의 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특별음악회 '백혜선 피아노 리사이틀'을 다녀왔다.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그녀의 화려한 연주를 직접 들을 기회를 가진 것이다. 건반을 넘나들며 열정과 섬세함으로 연주하는 것을 듣고 보는 두 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하게 들은 말 중, 실천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말은 "웃으면 복이 오고 즐겁다!"는 말이 아닐까요. 즐겁고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즐겁고 행복해지는 마술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것입니다. 4~50대 한창 직장 다니던 현역시절엔 월요병이 있어 월요일마다 힘들곤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매일 즐거운 소풍처럼 스스로 웃는 날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월요병이 점차 사라지고 설레는 소풍이 되곤 합니다.은퇴 후, 요즘 특히 올해는 월요병이 없도록 일부러 스케줄을 가능한 화요일부터 목요일 사이에 정하고, 월요일과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의 32층에 서울대 농대 학장을 역임한 오ㅇㅇ이란 교수님이 살고 있었다. 19년 전 처음 신규 입주할 때부터 함께 입주한 분이라 엘리베이터 등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하며 간단한 대화도 나누곤 했다. 당시 나는 60대 초반을 갓 넘긴 초로였고 그분은 77세라고 하셨던 것 같다. 항상 웃음기가 가시지 않고 정정해 보였다. 마나님과 함께 단지 내 산책을 자주하고 두 분이 손잡고 외출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나와 같은 교회에 다녔는데 매주 주일이면 어느 대학 교수라는 사위가 와서 픽업을 해 모시고 다녔다. 그런데
바람처럼 구름처럼 노래하리라/김미정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아파하지 않으리세상이 나를 바라봐주지 않아도 푸념하지 않으리 나를 바라보는 가녀린 눈길 하나로도 고맙다나를 떠올리는 애틋한 가슴 하나로도 고맙다 화려한 장신구도 빛나는 말사위도 필요치 않다숨 가쁘고 초라한 미미한 소리라 할지라도 혹여 희망의 메시지가 될까따사한 봄볕에 작은 행복을 담아 난 그냥 바람처럼 노래하리라난 그냥 구름처럼 노래하리라 (-음악치료사 초기 때의 두렵고 설레었던 마음)
어느 봄날/정현숙봄비에 씻긴 하늘은푸르다 못해맑은 종소리가들릴 듯 하다햇살 사이로 보이는바깥 풍경은수채화처럼 투명하다풀향기 꽃향기를실어나르는 바람은산들산들 신이 났다이토록 감미로울 수가이토록 상큼할 수가이런 날은못난 궁상 떨쳐버리고화사한 충동질에은근슬쩍 넘어가도 좋으리
외로운 호접란/오정환흰 바탕에 보라색 무늬나비를 닮은 꽃청자색 화분에 실려방충망 촘촘한 집에 갇혔다꽃은 어른이 됐다는 증거아늑한 예주 속에 신방을 차리고화려한 입술꽃잎 만들어유혹하는데기다리는 나비는 오지 못하고쓸데없는 말만, 이쁘다 이쁘다
인도네시아는 상당 부분 한국경제의 미래에 닿아 있습니다.시니어에게는 더욱 의미있는 나라입니다.겨울에 3-4개월 살기에 최고이니까요.
▶출연자 :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어예진 소장, 이주호 기자고령화와 출산율 감소, 점점 가속화되는 인구감소로 인해 미래의 대한민국 시장은 축소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경제의 지반 역할을 할 청년이 부족해지고 그 문제는 산업의 기근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를 부실하게 만든다. 그 결과 정년을 맞이한 사람들을 재고용 해야 하는 현상들이 벌어질 것으로 미래를 그려 보고 있다.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로 인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될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림 연구위원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 (삼프로T
송파에 있는 '주님의 교회'는 70세 이상 교인들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늘푸른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4월 18일, 평소 존경하는 이재철 목사님이 시무하던 교회 강단에서 '시와 음악이 있는 힐링 라이프' 인문학 강의를 하려니 감회가 새로웠다. 요즘은 직업소양교육 강의를 많이 하다보니 인문학 강의가 오히려 부캐가 되었다.늘푸른 대학은 오전에는 예배와 특강, 점심식사, 오후엔 특별활동(8개반)으로 잘 운영되고 있었다.
#108 정답 : 1경 7722조원
▶책 소개열여덟 살에 세상에 절망하여 죽으려고 마음먹은 후에는 내 손으로 선생님들께 보은의 꽃을 만들어서 달아드린 후 약을 먹었다. 다시 깨어난 후에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여 애 둘을 낳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느라 정신없이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2년 9월에 서둔야학 우명옥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한 후에는 별안간 ‘글만 쓰고 싶은 병’이 생기게 되었다. 그때부터 서둔야학 선생님들에 대한 얘기를 쓰게 되었다. 기억을 더듬고 정확한 자료를 찾기 위한 여행도 여러 번 하였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도 서둔야학 선생님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