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머무는 강변(江邊)의 정적(靜寂)을 말없이 깨트리며 수작(酬酌)을 부린 몽환적(夢幻的) 제목부터 전율(戰慄)을 느꼈던 시(詩)가 있었다. 바람이 없어도 향(向)해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詩人)의 시상(詩想)에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전력(全力)을 다해도 닫힌 문의 안쪽처럼 짐작(斟酌)도 못했다. 그 詩를 처음 만나고 가끔 읽을 생각으로 노트북 일기장에 옮겨 적어둔 적이 있다. 그 詩는 이렇다.이 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전통 4대 명절의 하나인 한식(寒食)에 조상(祖上)의 묘(墓)를 정비(整備)하고 단장(丹粧)할 때마다 표현할 수 없는 태생적(胎生的) 인연의 기쁨이 있다. 祖上의 선업(善業)과 음덕(陰德)을 기리고 빙의(憑依)된 혼령(魂靈)을 제단(祭壇)으로 초대하여 안부를 묻고 전하며 이 땅에 태어나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세상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기분 좋은 의식(儀式)이다. 성묘(省墓)를 마치고 산을 내려 올 때쯤이면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초대 받지 못한 ‘개자추(介子推)’다.제 아무리 박학심오(博學深奧)한 충신(
해빙기(解氷期)에 진달래꽃 몰래 피우는 먼 산을 바라보며 봄을 기다리듯, 첫 문장을 기다리며 타는 목마름으로 보낸 세월의 토요일이 18년 14주째에 이르렀다. 첫 문장이 풀리면 매주 토요일에 발송되는 루틴의 궤도(軌道)를 벗어난 적은 없지만, 첫 문장을 만나지 못하면 강박과 스트레스 때문에 생각이 막히고 날밤을 새우기도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격언이나 금언 위주로 가볍게 썼는데, 회(回)가 거듭될수록 글공부가 부족한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문밖으로 나가 도심의 골목길을 걷든지 소풍이나 여행(旅行)을 떠난다든
어떤 일에 있어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항상 후회가 따른다. “모든 일이 마무리 된 후에야 그 첫 걸음과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과지(過知)’라는 한자어로 표현된다. 하수(下手)들이 취하는 행동학의 결과물인 過知는 항상 뒤늦게 오며, 언제나 smw다. 그러나 강호의 고수(高手)들은 듣고 보는 순간 조짐과 기회를 포착한다. 청지(聽知)하거나 견지(見知)하는 그들은 기미(幾微)를 눈치 챌 뿐만 아니라 즉시 행동으로 옮긴다. 이것이 바로 '견기이작(見機而作)'의 발현(發顯)이다.‘見幾而作’의 출처는 주역의 계사 하편이다. "군
별일 아니라는 듯 누군가 말했다. "세 시간 정도 걸릴 거야."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연신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부족한 잠을 채우려는 필자(筆者)는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들으며 “정말 그럴까?” 속으로 되묻고 무거운 눈꺼풀을 덮었다. 이른 새벽에 우리는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처럼 일산을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입춘(立春)을 열흘 앞둔 서늘한 공기 사이로 주인 없는 시간들이 사라지고 있었다.정동진 여행은 筆者와 무관하게 이미 계획되었지만,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은 사주팔자(四柱八字)에 화기(火氣)가 많아 나름 물기(水氣)
살아 있는 것은 힘이다/존재 자체가 더 유능해지지 않아도/충분히 전지전능하다/살아 있고 의지만 있으면 된다/우리가 유한한 존재이더라도/창조주인 신만큼 유능하다존재의 미학을 숙명에 대한 저항처럼 각인(刻印)시켜 주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적(詩的) 창조의 함축은 은은한 암시와 살아 숨 쉬는 자의 내면을 전복시키고도 남는다. 안전벨트를 세게 잡아당겨서 전복에 이르지 않는다 해도 묵직한 두드림으로 정상적인 심박수(心拍數)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살아 있음의 의지(意志)가 유한(有限)의 경계를 넘어 공간을 초월한
지난 달 2월27일 안중근 의사(義士)의 미공개 유묵(遺墨)이 서울 옥션 경매에서 13억원에 낙찰(落札)됐다. 安 義士의 수인(手印)과 함께 1910년 3월 뤼순(旅順) 감옥에서 썼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인심조석변산색고금동(人心朝夕變山色古今同)’ 아주 멋진 유묵의 落札者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기업으로 ‘한미반도체’였다. 새로운 시작은 늘 신선하게 다가오는 법 희망의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기를 기대하며, 人心보다 山色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성찰(省察)에 집중했다. 안중근 義士의 色과 필자(筆者)의 色에 대하여.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1박2일 이상의 소풍이나 여행을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들뜬 입맛을 가라앉히고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이 기웃거리는 식당이 있다. 원초적 미각(味覺)이 시작되는 곳이다. 1996년 10월20일에 개업(開業)한 식당으로 상호(商號)의 풀네임은 주인장(主人丈)의 캐리커처까지 디자인 된 ‘전계능 소고기 따로국밥’, 자부심으로 요리하겠다는 쉐프(Chef)의 이름과 시그니처 메뉴를 결합한 정문(正門)의 현판(懸板)은 식객의 입맛을 훔친다. 상차림 메뉴라고 해봤자 콩나물 국밥과 함께 두 종류
100세를 넘기며 '나 자신을 위해 아름다움을 찾아 예술을 남기는 여생(餘生)을 갖고 싶다'고 시인(詩人)처럼 말씀하시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아무튼, 봄’ 희망 편지(2)에서 “오랫동안 사회 속에서 ‘선(善)’의 가치를 추구(追求)해왔다”고 했다. 이 시대의 가장 멋지고 善한 어른 노교수의 사자후(獅子吼)는 단순하고 명쾌하다.善의 가치가 104년 삶의 話頭라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리석은 필자(筆者)는 착하다, 또는 善하다는 말은 무능력하다는 뜻으로 읽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것을 동원하여
섣달그믐날에 헌 옷과 신발을 벗어 놓고 필자(筆者)의 몸에 잘 맞는 설빔을 장만하면서 대문을 열어 놓았지만 도둑처럼 담을 넘어 새벽 눈 내리듯 소리 없이 새해가 밝았다. 드디어 돌이킬 수 없는 청룡(靑龍)의 해 ‘갑진년(甲辰年)’이다. 출생의 비밀이지만 달라진 나이 계산법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태어난 해가 ‘임진년(壬辰年)’이라서 筆者와 龍의 관계는 숙명적(?)이고 자부심은 남다르다.龍띠는 일반적으로 기가 세고, 분노하며 후퇴할 줄을 모르며, 어떤 일에 매달리면 끝까지 일을 관철시키는 돌파력과 결단력이 있는 띠 동물로 오랜 역사를
‘생사사대(生死事大) 삶과 죽음이 가장 큰 일인데 무상신속(無常迅速) 덧없는 세월 빨리 가버리니 촌음가석(寸陰可惜) 짧은 시간도 한껏 아끼며 신물방일(愼勿放逸) 방심하고 게으르지 말라.’ 불가(佛家)에서 널리 회자(膾炙)되는 거대한 ‘화두(話頭)’같지만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라는 조언(助言)이자 가르침이며, 죽비(竹篦)다.竹篦에 깜짝 놀라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차근차근 둘러보았더니 1월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벌써 2월의 셋째 날이다. 새해 목표나 각오를 써 두었던 글씨의 잉크도 아직 남아있을 터이다. 새해의 단골 레퍼토리인 금연(禁
"책 한 권을 읽더라도 보탬이 되는 것 가슴에 새기거나 가려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지 않아야 한다." 에 나오는 독서(讀書)의 경지(境地)다.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컨셉(Concept)의 이 책은 올해 처음으로 완독(玩讀)한 책이다. 공감이 되면 밑줄을 긋고 필사(筆寫)하며 모처럼 학이락(學而樂)의 호사(好奢)를 누렸다. 과거이면서 현재인 미술관에 전시된 옛 명작들, 그리고 그 공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 대해 그 곳 경비원이
유명한 어느 시인은 치매예방을 위해 세계의 산을 외우며 아침을 시작했다고 한다.뇌세포의 노화를 막기 위한 뇌건강의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언어학습이라고 한다.오랜 외국생활 청산하고 서울에 오니 꼬부랑 영어글씨 안보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몇년간 영어를 잊고 지내다 얼마 전 잠시 외국인과 말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단어는 머리 속에 맴돌고 이 말이 맞았나? 고민만 하고 입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어는 잠시 안쓰니 이렇게 빨리 잊어버리는구나 실감한 순간이었다.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뇌세포가 생성될 수 있고 치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정체성이 가장 돋보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70년을 살아보니 제각각의 이유나 사연은 선택의 문제였다. 자신의 의지대로 배우고 살아 가야하기에 자기 성찰의 자유가 없는 주입식 대학 교육을 거부하고 중퇴(中退)한 레프 톨스토이 백작이 필자(筆者)의 우상이 되었던 것은 문학적 재주가 아니라 그가 52세에 완성한 너무나 인간적인 참회록(懺悔錄) 때문이었다. 참회록 이후, 묵직한 인생론을 썼고 그로부터 30년은 ‘성장(成
오래 된 친구들을 잊어야 하나, 다시는 마음에 떠올리지 말아야 하나? 그토록 오래된 친구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흘러간 옛날을 위하여, 그대여(---) 우리 다정한 축배를 들자, 흘러간 옛날을 위하여. 그래 너는 너의 술을 사고 나는 내 술을 살거야! 우리 다정한 축배를 들자, 흘러간 옛날을 위하여. 우리 둘은 언덕을 뛰어다니며, 아름다운 데이지 꽃을 꺾었지: 우리는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지소박하고 순수한 평등을 꿈꾸는 시인(詩人)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의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이다. 시
높은 곳에서 정신의 자유를 누리며 멀리 볼 수 있는 안목(眼目), 그 '시선(視線)의 높이(高)와 넓이(擴)가 그 사람의 수준'이라는 인문적(人紋的) 화두(話頭)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더 높은 곳을 향한 열망을 깨우고 발동시키려는 5개월(20주) 코스의 CEO 인문학 최고위과정(AMP)에서는, '쉼표(,)할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경구(警句)가 있듯이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도 결코 중단(中斷)하지 않고 지금까지 10년 동안 매년 봄학기와 가을학기 두 차례의 졸업식에서 수료증(修了證)을 수여하며 동고동락(同
우리의 이해 너머에 있는 시간을 이야기로 창조하는 소설가들의 상상력(想像力)을 벗어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초유(初有)의 사건이었다. 알카에다 조직원 19명이 민항기 네 편을 납치했으나 그중 하나는 불시착했고, 한 대는 미 국방부 건물 펜타곤에 충돌했으며, 두 대는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에 차례로 부딪쳤다. 부딪친 것이 아니라 공격한 것이다. 2만5000명 이상 부상자와 3000명 이상 목숨을 잃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이었다. 이 끔찍한 상처를 어떻게 회고(回顧)하며 극복할 것인가? 그곳에 정중하고 엄숙한 애도(哀悼
“글을 쓰려고 앉기 전에 깊은 행복감을 느낀답니다.” '장미의 이름'을 쓴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 글쓰기 언어다. 늘 그랬듯이 깊은 행복감은 없었지만 형편없는 쓰기로 시작해서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약간의 즐거움은 있었다. 그리고 우둔한 필자(筆者)의 고달픈 삶을 격려하고, 성장하게 하는 응원가(應援歌)이자 반딧불이 되어 준 편지들이 누군가에게 동기부여(動機附輿)가 되고 변화를 격동(激動)시키는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소명의식(召命意識)까지도 일깨워 주는 행운을 안겨 주었다.매일 매일 매순간 작은 개미들이 사과 껍질에
'송년회'칠순 여인네가/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나는 왜 항상/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마흔에도 그랬고/서른에도 그랬다/그게 내가 살아본/가장 많은 나이라서/지금은,/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이런 생각,/노년의 몰약 아님/간명한 이치/내 척추는 아주 곧고/생각 또한 그렇다(아마도)/앞으로!/앞으로!/앞으로, 앞으로!앞으로, 앞으로! 많고 적은 나이에 저항하는 나이듦의 선행(先行) 울림과 여운이 작지 않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건강한
아주 먼 옛날 원시시대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가 지금까지 전해지듯이 의미있는 시간의 순기능을 투시(透視)하는 것처럼 ‘신(神)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류시화 시인은 에 이어 인생에 다 나쁜 것은 없다는 작가의 경험과 깨달음을 묘사(描寫)한 에세이, 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의 새 책을 냈다.‘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화두로 삼고 질문하며 삶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인의 언어로 풀어냈다. 어떤 이야기는 재미있고, 어떤 이야기는 마음 깊은 곳으로 흘러가